사실 인류 역사상 민주주의가 최선의 제도로 받아들여진 적은 거의 없었다. 서양에서 ‘인민(Demos)’과 ‘권력(Kratia)’이라는 말의 합성어인 ‘데모크라시’는 자주 ‘중우(衆愚)정치’의 다른 말로 치부되곤 했다. 다만, 현대에 이르러 민주주의가 최선은 아니라고 해도 최악(最惡)은 막을 수 있는 정치 제도라는 점에 대해 많은 이들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을 뿐이다. 조세 정책을 포함한 재정학은 경제 분야에서 정치와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재정학에서 중우정치가 발현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최근 여야 정치권이 공무원연금을 개혁하겠다며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 비율)을 40%대 중반에서 50%로 올리기로 합의한 것은 대표적인 중우정치의 사례로 기록될 성싶다.
현재 하루에 100억 원이 투입되는 공무원연금 재정 보전금이 하루 60억 원 수준으로 줄어든다는 공무원연금 개혁은 재정 절감 규모라는 측면에서 부족하기 그지없지만, 논외로 하자. 다만 한 가지, 보험료를 5년에 걸쳐 올리는 대신 받는 돈을 20년에 걸쳐 깎겠다는 것은 이번에 합의한 정치인들이 정치를 그만두기 전까지는 공무원연금 수급에 큰 변화가 발생하지 않으며, 먼 훗날 큰 변화가 발생할 때쯤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나는 모르겠다는 식의 무책임한 사술(詐術)이 숨어 있다는 점만 지적해둔다.
이번 합의에서 가장 황당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현행 40%대 중반에서 50%로 올리기로 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는다. 국민연금은 출범 당시부터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달성 불가능한 소득대체율을 지닌 채 출발했다. 그 뒤 재정이 도저히 버티지 못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우여곡절 끝에 2028년까지 소득대체율을 40%로 낮추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 여야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하겠다고 모여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다시 50%로 끌어올리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연금재정 소요를 감당하는 방법은 2가지밖에 없다. 국가가 세금을 걷거나 국채를 발행해 수입을 늘리거나, 보험료를 높여 국민의 부담을 늘려야 가능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여야의 합의를 지키려면 국민연금 보험료를 현행 9%에서 18.85%로 높여야 가능하다.
물론 야당은 국민연금기금 적립금(2043년 최대 2561조 원)을 오는 2060년 다 소진한다는 전제하에 보험료를 1.01%포인트만 올려도 가능하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2060년부터는 1년 단위로 경제 활동을 하는 젊은이들이 보험료를 거둬 노인들에게 지급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2059년까지는 10.01%지만 2060년부터는 25.3%로 급등하게 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최선이 어려우면 차선·차차선을 선택하는 것이 정치 협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차선·차차선을 선택해도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 여러분은 집안의 누군가가 여러분의 손자, 증손자, 고손자까지 모두 길바닥에 나앉을 만큼 곳간의 재물을 탕진한다면 그걸 보고만 있을 것인가.
haed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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