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합의된 미·일 가이드라인을 반영해 집단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일본의 안보 법률 제·개정안이 15일 일본 국회에 제출됐다. 일본의 집단자위권법안을 계기로 ‘주권선(主權線)―이익선(利益線)’ 전술의 망령이 스멀스멀 살아난다. 이 이론은 일본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가 오스트리아 법학자의 이론을 원용해 지난 1890년 주창한 것으로, 근대 일본 외교 원칙의 한 중심에 버티고 있다. 주권선은 절대 침해당해서는 안 되는 주권영역인 일본의 국경을 뜻하고, 이익선은 주권선의 안위와 밀착관계에 있는 구역, 곧 일본의 이익과 관계되는 경계선인 한반도를 의미한다. 이익선인 조선이 침범되면 주권선인 일본열도도 위험해진다는 주장은 ‘방어적 팽창’이란 미명 아래 한반도 침략의 명분으로 내세워졌다. 15일 일본 국회에 제출된 안보 법률 제·개정안이 통과되면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명목으로 미국의 지원 차원에서 자위대를 세계에 파병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급성장하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일 동맹 간 갈등이 한반도를 경계로 충돌하면서 그 불똥이 어디로 튈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게 됐다. 제3국의 주권을 존중한다고는 하지만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이 갖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주변에서 중국과 미·일 간 충돌 시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군국주의 일본의 이념적 토대가 됐던 주권선-이익선 전술은 그 형태는 다르지만 최근 공무원연금 협상 과정에서 공무원 노조가 십분 활용하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안 마련을 위한 협상 시한 막판에 갑자기 불거져나온 게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안이다. ‘공무원연금―국민연금 패키지’ 안은 공무원 노조가 강하게 주장했고, 똘똘 뭉친 공무원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덜컥 받아들였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공무원연금을 개혁한다더니 느닷없이 국민연금을 끌어들인 배경을 놓고 여러 분석이 나오지만 공무원연금 개혁을 무산시키기 위한 공무원 노조의 고도의 전략전술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즉, 공무원노조는 ‘적게 내고 많이 받는’ 현행 공무원연금제를 주권선으로, 국민연금을 이익선으로 설정한 것 같다.
쟁점을 확대해 이익선으로 설정해놓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에 발목 잡혀 공무원연금 개혁 자체가 무산 위기에 처한 현실을 보면 공무원 노조의 전술은 기가 막히게 효과를 발휘하며 그들의 주권선을 온전히 지켜낸 셈이다. 국민연금을 이익선으로 내세운 꼼수에 정부와 청와대, 정치권이 꼼짝없이 말려들어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되고 급기야 국회 통과가 시급한 다른 법안까지 옴짝달싹 못 하는 현실은 후진적 한국 정치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국민연금을 끌어들여 공무원연금 개혁을 무산시키려는 꼼수를 국민은 제대로 꿰뚫어보고 있다는 점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오르는 사이버 여론을 보면 ‘공무원연금―국민연금 연계’ 주장에 대한 네티즌의 반발은 극에 달하고 있다. 체감하기로는 8(반대) 대 2(찬성) 정도로 압도적이다. 사이버 여론을 젊은 층이 주도하고 있고, 공무원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행태에 대해 특히 젊은 층의 반발이 거센 현실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그동안 정치·사회적 쟁점에 대한 사이버 여론은 진보·좌파에서 주도해왔던 점을 감안하면 깜짝 놀랄 만한 결과다.
야당 내에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온건파 목소리가 높아지고, 국민연금 대신 기초연금 연계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표(票) 계산 끝에 나온 결과이리라. 공적 연금개혁이 급하면 급할수록 국민에게 고통과 희생을 요구하기에 앞서 공직자들이 솔선해야 한다. 그게 제대로 된 나라다. 공무원단체가 똘똘 뭉친 100만 표를 무기 삼아 ‘공무원연금 기득권 사수’라는 주권선을 지켜낸다면, 그 대가는 국민의 주권선 침해로 돌아갈 것이다. 공무원연금 구멍을 메우기 위한 돈은 결국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국민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공무원 주권선 사수를 위한 친위대 역할을 누가 하는지. 그 결과는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 때 엄중한 표의 심판으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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