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협 / 정치부 차장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세계교육포럼(WEF) 참석차 방한하는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사무총장을 19일 면담한다. 하시마(端島·군함도) 탄광 등 조선인 강제노동 시설이 포함된 일본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에 제동을 거는 기회로 활용하려는 모양이다. 일본의 산업혁명 시설 미화는 역사 왜곡의 연장이라는 입장을 설명한다는 얘기다. 성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결정을 뒤집기에도 역부족이다. 전문가와 외교 당국의 자체 평가이기도 하다.

당연한 결과다. 일본이 2006년부터 치밀한 전략을 갖고 추진하는 동안 10년 가까이 손 놓고 있다 뒤늦게 호들갑 떤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까지 나서 위원국에 친서를 보내고 차관급을 파견해 표 단속을 벌였다. 급박한 와중에 안이한 외교부는 담당 대사를 2개월여 비워뒀다. 대일 외교가 총체적 위기다. 더 슬프고 화가 나는 대목은 최근 한 달 넘게 되풀이돼온 외교 당국의 꼼수다. 근대화 산업시설이라는 가면을 씌워 강제 징용과 인권 유린을 역사에 묻으려는 일본의 꼼수는 전략적이기라도 하다. 외교 당국의 꼼수는 근시안적이고 어처구니까지 없다. 엠바고(embargo)라는 언론과의 협조 시스템을 악용하는가 하면, 당국자가 오히려 “국제사회가 설득될 만큼 일본의 탁월한 전략”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패배의 불가피성을 항변하려는 건지, 자괴감의 표현인지 모를 변명일 뿐이다.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내가 일본은 잘 몰라서”라는 고위 당국자의 발뺌도 씁쓸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략 부재, 뒷북 대응, 안이함, 무능력, 무기력이라는 고질병 외교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등재 결정이 유력하다는 보도를 한 달 만이라도 막겠다는 기발한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한심하기 그지없다. 말이 엠바고지 속내는 소나기 비판을 피하고자 하는 심산이었다. 언론과 정치권의 질타를 피하는 게 그리 중요한가. 본질은 언론 재갈 물리기와 다름없다. 원래 엠바고는 국가안보 및 국가원수 신변에 심각한 문제가 우려될 때, 민감 현안의 동시 발표 필요성이 있을 때 등 극히 제한적으로 보도하지 않거나 시점을 미루는 경우다. 이번 사안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그저 외교부로서는 비판받는 상황이 싫었고, 두려웠다. 상대는 일본이다. 언론이나 지식인이 아니다. 외교 실패 비판론에 대해 “패배주의적·자기비하적 시각”이라는 윤 장관의 반박 뒤 정부 관계자는 “불필요하게 언론·학계 일반을 적으로 만든 우(愚)”라고 반성한 바 있다. 이번 일도 비슷하다.

시리즈로 쏟아내는 아베 총리의 과거사 도발을 바로잡는 데 온 힘을 쏟아도 모자랄 판인데 이렇게 본질과는 무관한 일에 외교부는 전력을 쏟아왔다. 정작 해야 할 일은 뒷전에 밀려나 있다.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이 여성가족부 장관 때 위안부기록물의 세계기록 유산 등록을 추진한 게 2년 전 일인데 이제야 목록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정부는 해야 할 일이 뭔지 제대로 짚어야 한다. 전략도 없고, 진정성도 느껴지지 않는 국익 활동이라는 말로 외교부만 국익을 위해 일하는 듯 국민을 현혹하는 일은 최소한 하지 말아야 한다.

jupiter@munhwa.com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