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를 이름으로 삼은 와인으론 ‘1865’가 꽤 알려져 있다. 골프 애호가들은 ‘18홀 65타’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현실성이 없는 타수(打數)라 해서 요즘은 ‘1879’도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인에게 특별한 브랜드로는 미 캘리포니아산 와인 ‘799 805 시크릿 레드 블렌드’가 있다. 우표 형태의 라벨에는 위도·경도상의 좌표가 표기된 독도의 모습이 선명하다. 제조사 독도와이너리는 지난 2007년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세계에 알리려는 재미동포·미국인이 의기투합해 만든 회사다. 짐작한 것처럼 와인명 ‘799 805’는 독도 우편번호다.
미국에선 이렇듯 숫자로 특정 지역을 지칭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국내에 소개된 적 있는 드라마 ‘90210’은 캘리포니아의 부촌 베벌리힐스의 집코드(ZIP code), 곧 미국판 우편번호다. 뉴욕 맨해튼에서는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집코드인 ‘10021’이 역시 부촌의 대명사로 통하지만, ‘10030’대 숫자는 할렘 지역임을 알려준다. 미국 집코드는 한국 주민등록번호만큼이나 일상생활을 하는 데 필수적인 숫자로, 쓰임새가 우편번호 이상이다.
독도와이너리가 고민할 변수가 생겼다. 국내 우편번호가 오는 8월 1일부터 전면 개편되면서 현행 여섯 자리 숫자는 다섯 자리로 바뀐다. 앞 세 자리는 광역 시도 및 시·군·구를 구분하고, 뒤 두 자리는 일련번호로 구역을 나눈다. 이렇게 만들어진 우편번호는 전국에서 3만4349개다. 독도는 ‘40240’이라는 새 번호를 얻었다.
바뀐 우편번호의 다른 이름은 ‘국가기초구역 번호’다. 기존 우편번호는 일제강점기 이래 이어져 온 읍면동 체제를 기준으로 했다. 하지만 법정동·행정동·지번 등이 복잡하게 얽힌 현 시스템은 사실상 위치 식별 기능을 상실했다. 4년 전 국가경쟁력위원회의 제안으로 전국을 실 생활권에 맞춰 격자형으로 잘게 쪼갠 것이 국가기초구역이다. 3만4000여 구역은 우편뿐 아니라 치안·소방·취학·선거 등을 수행하는 기초단위가 된다. 행정구역의 실질적인 개편이다.
새 제도 시행이 코앞이지만 모르는 시민이 태반이다. 제2의 도로명 주소가 될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일상과 뗄 수 없는 번호라는 점에서 한국판 집코드가 될 소지가 크다. 조만간 가로수거리·서촌 등을 대신하는 다섯 자리 숫자의 상징부호가 나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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