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갈등관리 선진국에서 배운다 - (1) 유럽
지난 2010년 ‘슈투트가르트21’ 사업을 반대하는 독일 시민들이 노란 팻말을 들고 반대 집회를 벌이고 있다. 아래 사진은 같은 해 갈등 조정 전문가 하이너 가이슬러 및 찬반 입장을 지닌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한 가운데 열린 중재 회의 모습.  문화일보 자료사진
지난 2010년 ‘슈투트가르트21’ 사업을 반대하는 독일 시민들이 노란 팻말을 들고 반대 집회를 벌이고 있다. 아래 사진은 같은 해 갈등 조정 전문가 하이너 가이슬러 및 찬반 입장을 지닌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한 가운데 열린 중재 회의 모습. 문화일보 자료사진

최근 한국 사회 곳곳에서 갈등이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발생한 이익 갈등이 가치·이념 갈등으로 변질돼 장기화하는 특성도 보인다. 이 같은 갈등은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 과도한 사회적 비용까지 들게 해 경제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압축 경제성장의 그늘인 지역 이기주의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세대 간 갈등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면서 한국의 사회갈등은 더욱 다양해지고, 첨예해지고 있다. 이에 문화일보는 지난해 8월부터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장기 기획 ‘2014·2015 대한민국 갈등 리포트’ 3부에서 유럽과 미국 등 민주주의의 역사가 깊은 선진국들의 갈등 해소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슈투트가르트 중앙驛 지하화
녹지훼손 우려에 격렬한 시위
전문가 중재·과정 실시간 공개
국책사업 갈등 해소 모범 사례

獨 브란덴부르크 공항 건설땐
주민참여 ‘대화포럼’ 이 역할

佛 드골공항 고속철도 갈등
수차례 공공토론 상대편 설득


◇독일 사회 갈등 급증 계기 된 ‘슈투트가르트21’= 독일의 ‘슈투트가르트21’ 사업은 지난 1994년부터 논의돼 2010년에 첫 삽을 뜬 철도 및 도시 재개발 사업이다. 이 사업은 슈투트가르트-울름 간 노선을 개설, 유럽 주요 도시들을 연결하는 유럽연합의 유럽대륙 연결망 구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을 독일은 물론, 유럽 철도 교통의 중심지로 개발함과 동시에 기존 지상 역사는 지하로 옮기고, 또 기존 철도 부지는 복합 개발하는 것이 이 사업의 주요 내용이다. 사업비만 41억 유로에 이르는 대규모 국책사업이다.

그런데 이 사업은 공사 진행과정에서 시민사회의 반대에 직면했다. 시민단체들은 41억 유로에 이르는 예산을 교통 부문에 지속 투자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며, 역사 인근 녹지의 오래된 수목 훼손 및 주민 식수원인 역사 주변 지하수 오염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사업에 반대했다. 1997년 사업 계획단계에서 시민들은 사업 추진 여부를 ‘시민 결정’ 절차를 통해 정할 것을 요구했으나, 시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타당성 검토-주 의회 승인-사업 비용 합의 등의 절차가 진행됐으나 시민사회와의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이에 2009년 10월 첫 시민 반대집회가 열렸고, 11월 이후에는 정기적으로 ‘월요집회’가 열렸다.

특히 시민 반대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2010년 2월 기공식 당시 기존 역사의 정차시설을 상징적인 의미에서 철거했는데, 시의 이 같은 결정이 시민들을 크게 자극했고, 같은 해 9월에는 7만여 명의 시민들이 경찰과 극렬 대치하기도 했다.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로 양측의 갈등은 감정 싸움 양상으로 전개됐고, 갈등은 해소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갈등 관리·해소 모범 보여준 ‘중재절차’=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던 갈등이 해소 분위기로 돌아선 것은 쌍방의 자율적 이행에 기초한 ‘중재절차’ 덕분이었다. 2010년 10월 당시 기민당 출신의 환경부 장관이었던 바덴뷰템베르그는 중재를 제안했고, 녹색당은 이 중재를 받아들이고 기민당 비서실장을 역임한 ‘하이너 가이슬러’를 중재자로 지목한다. 가이슬러는 다양한 임금협상에서 경험이 있는 갈등 조정 전문가였다. 무엇보다 보수적인 기민당 소속임에도 그의 진보적인 정치성향이 불필요한 갈등 여지를 차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이너 가이슬러는 치밀하게 중재를 준비했다. 두 달간 8차례에 걸쳐 찬성·반대 측과 가이슬러가 참여한 가운데 중재가 진행됐다. 사업 관련 자료가 빠짐없이 공개되도록 했고, 중재절차를 방송 생중계로 전 국민에 공개했다. 밀실 회담을 지양해 일반 시민의 참여와 관심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억측과 새로운 갈등을 차단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권용석 대구경북연구원 박사는 ‘국책사업 사회갈등 해소에 대한 독일사례 검토(2011)’에서 “각 일정마다 논의된 내용을 객관적 입장에서 종합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적 대안을 제시토록 한 것이 효과를 봤다”며 “독일 사회 갈등 급증의 계기가 된 슈투트가르트21 갈등을 효과적인 중재절차 마련을 통해 해결한 사례”라고 분석했다.

◇‘대화포럼’이 종결시킨 ‘베를린-브란덴부르크 국제공항 건설’ 갈등= 2000년 2월 본격 공사에 들어간 ‘베를린-브란덴부르크 국제공항 건설’ 갈등은 ‘공항역세권 대화 포럼’이 갈등을 푸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갈등의 첫 번째 원인은 입지선정 문제였다. 여러 대안이 제시됐음에도 정치적 이해관계 등으로 인해 이 지역으로 입지가 선정됐다.

또 사업계획 단계에서 노선이 변경돼 인근 주민 사이에서 소음 문제도 불거졌다. 공항역세권을 두고 지역발전 문제도 나타났다.

이에 ‘공항역세권 대화포럼’이 조직됐다. 지역대표, 시민단체, 사업 주체, 전문가 그룹 등이 참여하는 대화포럼은 이익의 공평한 분배, 항공소음피해 최소화 및 지역적 균형개발을 목표로 정했다. 공항 주변 9개 군, 3개 시, 3개의 베를린 구가 참여했으며, 이 대화 포럼은 일반인 누구에게나 공개됐다. 전문가들은 대화 포럼 내 전문가 그룹과의 협의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정책 활용 가치가 있는 대안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고, 이렇게 제시된 대안이 사업주체 및 정책가에 의해 받아들여진 점이 갈등 해소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갈등관리 전담기구로 체계적 갈등 해결하는 프랑스 =프랑스에서는 지난 2002년 매년 6000만 명이 찾는 유럽 최대공항인 프랑스의 관문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 공항 고속철도를 건설하는 문제를 두고 갈등이 발생했다. 무산 위기에 처한 고속철도 사업이 되살아났는데, 이는 프랑스의 갈등관리 전담기구인 ‘국가공공토론위원회(CNDP)’가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CNDP는 고속철도 건설 계획이 발표된 뒤 한 달 만인 2003년 1월 갈등 해결을 위한 개입을 결정하고 8월부터 4개월간 23번의 공공토론회를 진행했다.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 전문가와 사업 시행자가 모두 참여한 공공토론회에서는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2년 만인 2005년 초 정부는 당초 계획을 수정해 고속철도 사업을 다시 추진하게 됐다.

특히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의견을 반영해 일부 노선에 대해서는 기존 일반철로를 개선해 사용하기로 하면서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이 당초 6억6000만 유로에서 3분의 1 수준인 2억 유로 정도로 크게 낮아졌다. 주민과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용해 사업 예산을 크게 줄이는 등 사업 내용 수정을 거쳐 반대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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