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강흠 / 연세대 교수·경영학

기업의 주주(株主) 가치 훼손에 대한 기관투자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말부터 국민연금기금이 배당의 결정과 관련해 회사나 그 임원에 대해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찬반 의사표시에 그치지 않고 과소배당 기업에 대해 주주 관여를 하고, 중점감시 기업으로 분류해 관리하며, 주주 제안으로 배당 관련 안건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으로는 이사 및 감사 선임과 보수, 정관(定款) 변경 등으로 주주권 행사를 확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해외 대형 연기금들은 기금 자산의 가치 증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이 보편화해 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캘퍼스)은 경영 실적이 나쁜 기업 중 기업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기업의 명단과 지적 사항 등 개선 사항을 구체적으로 적시한 리스트(Focus List)를 공개한다. 국민연금과 자산 규모가 비슷한 네덜란드 공무원연금기금(APB)은 지난 3월 현대자동차 주주총회에서 한국전력 부지 투자에 이의를 제기해 투자자 권익 보호 조직 설치를 요구했고, 내분이 있었던 KB금융지주에는 사외이사를 추천했다.

국민연금기금이 민간기업에 대한 경영 간섭과 기업 지배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주주 관여·제안을 배당 관련과 연계시킨 것은 기업이 필요 이상의 자금을 대주주나 경영진의 통제 아래 두고 주주 이익을 가로챈다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과소 배당 여부는 기업의 현재·미래의 수익과 투자 기회, 자금 조달 비용, 재무 구조, 자금 시장 여건과 경제의 불확실성 등을 고려, 판단해야 한다. 주주마다 현금 수요, 거래 심리, 소득세율, 투자 목적 등이 달라 국민연금기금이 요구하는 배당에 다른 주주는 반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이 지나치게 보유한 현금으로 일감 몰아주기나 불법 증여, 개인적 목적 등에 사용한다면 기업 이익에 대한 배당이나 자사 주식 취득 요구는 거세질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기금의 주주권 행사 빌미는 주주를 경시하는 기업들이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기업은 실정에 맞는 배당 정책을 수립한 후, 기업 설명회 등을 통해 투자자에게 밝혀야 한다. 그러면 기업의 배당 정책에 만족하는 투자자만 주주가 될 것이기에 배당으로 인한 기업과 주주 간 갈등은 줄어들 것이다. 기업이 마음 내키는 대로 배당을 주니까 불만을 갖는 주주가 생기고 경영진에 대한 각종 의혹도 갖는 것이다. 배당 이외의 주주 불만도 해결해 줘야 한다. 지난해에는 현대차가 터무니없이 높은 한전 부지 낙찰가를 제시하고 나서 현대차 주가가 3개월여 만에 무려 40%나 곤두박질해 현대차 주주의 원성을 샀다. 다소 늦은 감이 있으나 이제라도 주주 친화적 경영을 펴야 한다. 최근 해외 공장 생산량의 조절 등을 요구하고 나선 현대차노조의 부당한 경영권 개입을 주주 친화적으로 처리해 주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기업의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경영자는 퇴진시키는 것이 정상이다. 애플의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였던 스티브 잡스도 매킨토시 프로젝트의 실적 저조로 이사회에서 축출당한 바 있다. 기업인이 주주를 경시하지 못하게 하려면 이사회가 경영진의 효과적 감시, 회사와 주주에 대한 책임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수행해야 한다. 이사회가 권력층으로 구성돼 회사의 자문기구나 대정부 로비 창구로 이용돼서는 회사와 주주의 이익에 최선을 다하고 주주에게 손해를 보이는 경영진을 퇴진시킬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

장기 투자자로서 문제 기업의 주식을 팔고 떠날 수 없는 국민연금기금은 주주로 남아 투자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할 것이다. 지난해에는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에 반대해 주식매수 청구권을 행사하고 다른 투자자들이 이에 동조해 두 회사의 합병을 철회시킨 바 있다. 한라공조의 공개 매수에 응하지 않아 최대 주주인 미국 비스테온사 상장 폐지 계획을 막기도 했다.

국민연금기금이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의결권 행사를 넘어 주주 관여, 중점관리 기업 리스트, 주주 제안, 사외이사 추천, 투자자 연대, 주주 소송, 입법 운동 등의 적극적 주주권을 점차 강화해 나갈 조짐이 보인다.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위탁 운용사에도 주주권 행사를 요구하고 있다. 기업이 외부로부터의 경영 간섭을 피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자발적으로 나서 주주 친화적 경영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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