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수산시장은 살아 있는 서울시민의 도·소매시장이면서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진 무력감을 이기는 데 훌륭한 처방이 되는 구원자이기도 하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상인들은 언제나 분주하다.  곽성호 기자 tray92@munhwa.com
노량진 수산시장은 살아 있는 서울시민의 도·소매시장이면서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진 무력감을 이기는 데 훌륭한 처방이 되는 구원자이기도 하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상인들은 언제나 분주하다. 곽성호 기자 tray92@munhwa.com

42 셰프 박찬일이 본 노량진 수산시장

“무거운 것 들지 마세요. 디스크예요.”

그 시절, 나는 매일 인터넷에서 2만3000원 주고 산 20ℓ들이 아이스박스를 메고 노량진 수산시장에 다녔다. 이른 새벽, 시장 옆으로 뚫려 있는 칠흑 같은 올림픽도로. 그 옆에 택시를 세우고 바라보는 시장 건물은 어마어마한 인공조명등 때문에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경매장에 들어서면 끝도 없이 늘어선 활어를 담은 생선 상자가 반겼다. 경매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방언처럼 중얼거리며 경매를 진행하면, 나는 아이스박스를 메고 물끄러미 그 광경을 보았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1000만 서울시민의 생선을 대는 도·소매시장이면서 동시에 어떤 구원지로도 기능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 삶에 지치면 시장에 가라고 했듯이, 이 시장의 활력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무력감을 이기는 데 훌륭한 처방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이 새벽에, 엄동도 무더위도 마다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깊은 경각의 충격이 오는 것이다. 무심한 표정으로 생선 배달 상자를 끄는 사람들, 아무렇지도 않게 주문받은 활어의 숨통을 끊는 육중한 생선칼의 무게, 환한 알전구 아래 무심하게 누워 있는 생선들, 잘 드는 무사의 칼을 닮은 제주산 갈치의 반짝이는 은색 피부 같은 것들.

이 시장을 조감하고 싶으면, 1호선 노량진역에서 바로 이어지는 구름다리를 타고 들어간다. 2층에서 내려다보는 시장은 문자 그대로 불야성이다. 인공등이 힘껏 조도를 쥐어짜고, 개미처럼 수많은 사람이 움직인다.

“장화를 신어. 안 그러면 호구로 잡혀.”

노량진에 먼저 드나들던 내 친구가 경고했다. 장화는 이곳에서 일종의 신분증이다. 장화를 신었다는 것은, 마치 전대 두르고 평화시장에 나서는 것 같은 일이다. 서로 프로답게 사고파는 장의 출입증이 된다. 난 호구가 안 되기 위해 장화를 신고, 생선의 아가미를 아무렇지도 않게 맨손으로 활짝 벌려 보고-아가미를 열면 마치 내장 속을 보는 것 같다. 고기의 치욕이다-아니면 비늘 덮인 피부를 눌러 보기도 했다. 한겨울, 이 시장은 더 극적으로 변한다. 바깥이 꽁꽁 얼면 시장도 같이 언다. 개방형 시장이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옷을 껴입은 상인이 얼어붙은 입을 열기도 귀찮아서 손가락으로 가격을 말하는 침묵의 거래를 볼 수 있다. 소금기 섞인 바닥의 물이 얼면 마치 빙수얼음처럼 켜를 이루며 길을 메우고, 이때 구매자와 상인 간의 묘한 긴장이 생긴다. 선어가 모두 땡땡 얼어버려서 냉동인지 구별이 안 되기 때문이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5만2890㎡(1만6000여 평)의 대지에 100명이 넘는 중도매인과 800개 남짓의 점포를 가졌다. 활어를 주로 취급하는 주 통로는 언제나 호객꾼과 손님들로 넘쳐나고 24시간 가동되는 시장의 하루는 활어처럼 펄떡인다. 1927년 일제강점기에 경성수산이 연혁의 시작이다. 의주로에서 있었다는데, 아마도 지금의 서소문공원 자리인 듯하다. 이후 민간에 넘어가 여러 번 소유주가 바뀌다가 현재는 수협 소속이다. 경매는 주로 심야에 이뤄진다. 조개와 갑각류를 시작으로 선어, 활어로 넘어간다. 구경거리로는 새벽에 진행되는 활어가 그만이다. 각기 방수가 되는 크레용으로 중량을 휘갈겨 쓴 ‘계근표’를 단 생선들이 노란색 상자에 담겨 팔린다. 전국의 주요 생선들이 모두 이곳에 모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서울시민이 즐겨 먹는 생선을 중심으로 경매가 이뤄진다. 고등어, 삼치, 오징어, 넙치 같은 것들이다. 나 같은 식당업자나 도매상들이 새벽에 출몰한다. 서로 먼저 물 좋은 놈을 차지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닌다. 대개 단골가게를 정해 두게 마련인데, 시장 보는 속도를 올려 주고 특급 물건을 미리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스파게티용 고등어·문어, 구이용 생선을 주로 산다. 고등어는 이제 금(金)등어가 됐다. 열댓 마리 들어간 한 상자를 5만 원도 부른다. 단골가게 아줌마는 늘 한숨을 쉰다. 고등어가 오늘도 비싸다고 나를 보면 울상부터 짓는다. 단골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좋은 마음씨다. 이 가게에 반짝이는 고등어가 없으면 ‘월명기(月明期)’임을 알게 된다. 달이 밝아 집어등 효과가 떨어져 고등어잡이를 쉬는 시기다. 홍합과 조개를 파는 단골집에서는 늘 사이좋은 모녀인지 고부인지가 바쁘게 일한다. 홍합수염을 예쁘게 손질해서 판다. 이 집 상호가 ‘복띵이’이길래 물어봤더니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손주다. 그렇구나, 이 복띵이. 예쁘게도 생겼다. 아이의 미래를 걸고 장사하는 집, 믿을 수 있다.

칼을 좀 쓴다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한밭대장간.
칼을 좀 쓴다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한밭대장간.
노량진은 장사꾼이 드나드는 도매 중심 시장이지만, 활어와 제철 생선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는 일반인도 많다. 철이 다 있어서 이곳에 들르면 계절 미각이랄까. 혀가 호강한다. 지난봄에는 새조개와 주꾸미를 바지락 국물에 토렴하고, 지금은 참돔을 회 뜨고 꽃게로 탕을 끓인다. 한여름에는 민어가 인기를 끌고, 서해안에서 대하가 나오는 가을철에는 은박지를 깔고 다들 새우를 굽는다. 한때 꽃게와 대게, 킹크랩이 쌀 때는 식당마다 게를 찌느라 수증기를 푹푹 뿜어내기도 했다. 내가 먹는 방식이 있다. 먼저 해물과 생선을 사서 ‘양념집’으로 간다. 자, 장을 보자. 1∼2㎏짜리 문어를 한 마리 사거나, 낙지도매상에서 큰놈으로 두어 마리 산다. 문어는 삶아서 먹고, 낙지는 ‘탕탕이’(큰 칼로 탕탕 내려쳐서 회를 먹는 방법)를 해달라고 한다. 회는 활어를 사기도 하지만, 선어를 쓸 때도 있다. 한겨울, 최고로 물이 좋을 때 삼치를 사서 회 떠 달라고 해 묵은김치와 먹기도 했다. 거죽에 표범처럼 얼룩이 있고 청회색으로 반짝이는 물 좋은 삼치라면 가능하다. 대구를 사서 탕을 끓일 때도 있다. 한겨울, 거제나 마산에서 올라온 대구는 탕을 끓이면 녹는다. 아, 그 깊은 바다의 맛이란! 탕을 다 먹고 나서 밥을 볶는 게 일반적인데 나는 라면을 넣어 끓인다. 특히 봄에 주꾸미 토렴을 먹고 아스팔트 코르타르처럼 진득하고 검은 국물에 넣어 먹는 라면 맛은 음험할 만큼 매력적이다. 봄에 주머니가 가볍다면 숭어회를 추천한다. 산처럼 쌓인 숭어가 마리당 몇 천원밖에 안 할 때도 있다. 숭어알만 따로 사서 어란찌개를 끓여 보라. 정말 기가 막혀서 알탕이라고 부르는 명태알찌개를 먹는 사람들이 불쌍해진다.

새벽이나 아침에 이 시장에서 아주 식욕 당기는 장면을 눈여겨볼 때가 있다. 상인들이 배달받은 밥상-대개 생선찌개가 놓여 있다-을 아무렇게나 놓고 생선 상자를 의자 삼아 밥을 먹는 것이다. 막걸리 한 병이 곁들여지는데, 그들에게는 그 시간이 하루를 마감하는 때이므로 한 잔 술을 피할 수 없다. 이렇게 먹어 보고 싶은 이들은 주 통로 안쪽에 있는 허름한 밥집을 찾아가면 된다. 겨우 비닐 천막을 두른 밥집에서 거친 시장밥을 사 먹을 수 있다. 물론 한 잔 곁들이면 상인들의 기분을 맛볼 수 있다. 노량진역으로 가는 계단 참의 손수레 상인에게서 한 잔의 진한 시장표 커피를 사 마시는 것도 좋다.

올여름에는 새로운 노량진 수산시장이 들어선다고 한다. 1971년 이 자리에 들어섰던, 그리하여 서울시민에게 비린 것들의 녹진한 맛을 안겨주었던 한 시절이 마감한다. 이 최후의 자리는 그저 불도저로 밀어버릴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잔치마당이자 송별식이 되었으면 한다. 장 본 생선의 무게로 기꺼이 디스크를 앓았던 나도 참석하리라. 낡은 아이스박스도 함께 이 자리에 묻으리라. 염도 있는 물에 삭아버린 장화도 장례를 치러 주리라.

새로 생기는 시장에 주문할 것도 있다. 동남아와 백인 관광객이 구경하러 많이 오는데, 얼굴 검은 이들에게 차별의 언사를 말아 주었으면 한다. 또 주 통로에서 아무나 길을 막는 불쾌한 호객꾼도 사라지기를 말이다.

몽로 셰프·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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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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