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케이블 사업자들은 업계 내부와 외부에서 그야말로 격변기를 겪고 있다. 지상파방송 재송신료 분쟁이 끊이지 않고, 인터넷 기반 영상 서비스 사업자(OTT) 넷플릭스 가입자가 약 4000만 명을 기록하며 컴캐스트와 타임워너의 유료방송 가입자 수를 합친 것보다 많아졌다.
지난 5일 시카고에서 개막한 ‘인터넷·텔레비전 박람회’(INTX)는 미국 케이블산업 현장을 둘러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행사에 앞서 한국 참관단과 별도의 세미나를 가진 전미케이블방송통신협회(NCTA) 임원들은 재송신료 문제에 대해 인터넷TV(IPTV)와 OTT 등으로 콘텐츠 유통 경쟁은 심해지고 있지만, 지상파방송채널은 그대로 유지되다 보니 힘의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케이블 업계 1위 컴캐스트가 2위 타임워너를 인수해 협상력을 높이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 시도는 최근 당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케이블업계의 몸집 불리기 논의가 당분간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다.
이번 행사에서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규제 이슈였다. 미연방통신위원회(FCC) 토머스 휠러 의장은 6일 제너럴 세션 기조연설을 통해 “케이블은 더는 TV 사업자가 아니라 브로드밴드(초고속인터넷) 사업자”라고 규정했다. 실제로 최근 케이블 사업자들의 브로드밴드 가입자 수가 방송 가입자 수를 넘어섰다고 한다. 지난해까지 ‘더 케이블 쇼’로 불리던 행사 명칭을 올해부터 ‘인터넷’이 포함된 INTX로 변경한 것도 브로드밴드의 성장과 IP 기반 서비스의 확대를 염두에 둔 것이다.
FCC의 ‘브로드밴드 사업자 규정’ 발언은 케이블 사업자에게 적용할 새로운 규제(타이틀2)에 대한 전제를 제시하기 위함이다. 전화 사업자와 같이 분류되는 타이틀2는 공공 사업자로서의 책임이 강조되는 강력한 규제를 의미한다. 하지만 케이블 업계는 타이틀2에 대해 FCC의 권한을 넘어선 지나친 규제라며 불복 소송을 제기한다.
치열해진 경쟁, 규제의 변화, 재송신료 분쟁, 인수·합병(M&A) 논의 등 미국 케이블 업계를 둘러싼 소용돌이가 만만찮아 보인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NCTA의 한 임원은 “수많은 퍼즐 조각을 어떻게 맞춰 갈지 아무도 모른다. 불확실성만 존재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케이블 산업의 현실을 돌아보자. 케이블방송 출범 20년이 지나면서 수많은 채널이 생기고 VOD, N스크린, UHD 방송까지 보는 세상이 됐다. 케이블에 이어 위성방송, IPTV가 나오면서 유료방송 가입자 규모는 약 2700만 명이나 된다. 하지만 가입자 규모가 산업을 키우고, 고용 창출과 콘텐츠 투자로 이어져 지속적인 선순환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외화내빈(外華內貧)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동통신과 브로드밴드를 장악한 대형 통신사의 서비스에 방송이 결합 판매되면서 시장 왜곡 현상을 심화시키고도 있다. 반면 케이블사의 경우 이동통신 중심의 결합 판매 시장에서 대응 수단 마련도 요원한 상태다.
우리 미디어 시장은 어떤 면에서는 미국보다 더 급변하고 있다. 하지만 변화의 속도만 강조됐을 뿐, 장기적으로 산업을 키우고 소비자를 이롭게 하는 변화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서는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사업자와 정책 당국 모두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복잡하게 흐트러진 퍼즐 조각들을 눈앞의 실적에 맞출 게 아니라, 진정한 미래 경쟁력과 성숙한 생태계를 위해 끼워 맞춰야 한다. 불확실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에게 조금씩 확실성이 더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