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유럽의 병자(病者)’로까지 불렸던 독일을 제2 경제부흥기로 이끈 무기가 ‘하르츠 개혁’을 핵심으로 하는 ‘어젠다 2010’ 프로그램이었다. 독일이 이뤄낸 노동·연금·세제·교육 등 포괄적 개혁은 박근혜 대통령의 4대 구조개혁 과제와 흡사하다. 당시의 두 주역(主役)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와 페터 하르츠 전 노동시장개혁위원장이 방한, 생생한 조언을 내놓았다.

슈뢰더 전 총리는 21일 한국경제연구원 초청 특별좌담에서 “개혁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노조와 회사 측 의견을 충분히 듣는 것은 중요하다”면서 “최종 결정은 정당성을 가진 정부가 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민주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정부가 직접 방안을 만들어 개혁을 밀어붙여야 한다”고도 했다. 당시 독일도 노사정위원회 성격의 단체를 통해 합의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후 15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하르츠위원회에서 개혁안을 만들고, 정부·정치권이 입법을 관철했다. 슈뢰더 사민당 정부는 전통적 지지층의 표심을 거스르면서까지 개혁을 진행하다 정권을 내줬지만, 독일의 재기 발판을 다졌다. 하르츠 전 위원장도 이날 세계경제연구원 주최 강연에서 “일단 정책을 정하면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국가 리더십을 강조했다.

현재 공무원연금 개혁은 본질에서 탈선하고, 노동개혁은 표류 중이다. 하르츠 개혁의 두 주역은 ‘국익 우선’의 원칙과 ‘정부 주도’라는 방법을 제시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개혁의 시행과 효과에 시차가 있는 만큼 정권을 잃더라도 국가를 위해 할 일을 하는 것이 정치인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박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새겨 들어야 할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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