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는 지난 20일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ALC) ‘무라야마와의 대화’ 세션에서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먼저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이 군대위안부를 만들었으니 먼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1995년 8월 15일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하면서 일본이 전쟁과 식민지 지배로 아시아와 세계에 피해를 준 역사적 사실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그 후 20년간 일본 정부는 그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해 왔다. 하지만 현 아베 신조 정권은 역사 수정주의의 입장을 취하면서 새로운 담화를 낸다고 공표한 상태여서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과거 나치 정권이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 전쟁포로들 중 생존자들(약 4000명 추산)에 대한 피해 보상을 위해 독일 연방의회 예산위원회가 이날 올 예산집행 계획을 조정하면서 1000만 유로(약 122억 원)를 보상액으로 책정했다는 현지 언론 보도는 일본에 시사하는 바 크다.
돌이켜보면 일본이 한국에 대해 결자해지한 역사적 선례가 있다. 17세기 말 조선과 일본은 울릉도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였다. 당시 일본 돗토리번(돗토리현) 어부들이 울릉도와 독도를 왕래하면서 두 섬을 일본땅이라고 우겼기 때문이다. 조선은 당시 숙종 시대였는데 장희빈의 몰락과 더불어 서인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그때까지 나약하게 대응한 남인 세력을 대신해 일본에 울릉도 문제를 강력하게 항의했다. 이에 일본 장군이 울릉도는 조선에 가까우니 조선 땅이라고 인정해 울릉도 문제를 마무리지었다.
그런 다음에 그는 울릉도와 비슷한 섬이 또 있느냐고 물었고, 돗토리번의 영주가 ‘송도’(당시 독도의 일본식 이름)라는 섬이 있다고 대답했다. 장군이 그 섬은 당신들의 소유냐고 물었더니 돗토리 영주는 송도(독도)가 돗토리 소속이 아닐 뿐더러 일본의 어떤 지방에도 소속돼 있지 않다고 솔직히 대답했다. 이로 인해 일본은 17세기 말에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인정하여 당시의 조선과의 갈등을 결자해지했다. 그 사실을 1870년과 1877년 일본 메이지 정부가 재확인해 독도는 조선의 부속이므로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공문서를 후세에 남긴 것이다. 이처럼 일본이 현재 독도에 대해 억지로 영유권을 주장하지만, 17세기 말과 19세기 후반에는 일본의 중앙정부가 독도 문제를 ‘결자해지’했던 역사적 사실이 있다.
무라야마 전 총리의 말대로 일본이 한국에 대해 결자해지해야 할 일이 많다. 그중에서도 먼저 위안부 강제 동원의 사실 등을 아베 총리가 인정해야 한다. 2013년 4월 그는 ‘침략’에 대한 국제적·학술적 정의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면서 일본의 과거 침략 사실을 부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국가 책임자가 먼저 일본이 침략 국가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해야 많은 일본인의 마음속에 결자해지의 의사가 싹트기 시작한다는 것은 도리 중의 도리다. 세계적으로 비판을 받는 역사 수정주의의 입장을 일본이 바꾸지 않으면 일본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꼭 한 달 뒤인 6월 22일은 한·일 수교 50년이 되는 날이다.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아베 총리의 사죄를 촉구하는 세계 학자들의 성명에 187명이 동참했었는데, 지금은 450명을 넘어섰다. 수교 50년을 한·일 양국이 마음의 응어리 없이 맞이하기 위해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는 결단을 내리고 과거사를 결자해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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