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한 표정이 된 최정현이 서동수 앞에 놓인 식은 어묵 국그릇을 집어 들며 말했다. 손가락은 물기에 붉어져 있었지만 섬세하다. 최정현이 혼잣말을 이었다.
“하긴 장관이시니까요, 만나는 사람이 누구인지 먼저 조사를 하시겠죠.”
“그건 아냐.”
“그럼 나중에 하셨어요?”
“시키지 않았어.”
한입에 소주를 삼킨 서동수가 지그시 최정현을 보았다.
“내가 어느 순간에 가장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알아?”
반쯤 몸을 돌린 최정현이 어묵 냄비를 국자로 저었고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이런 순간이야.”
“왜요? 내가 부자라는 현실이 느껴져서 그런가요?”
“비슷하지. 내가 조금만 베풀어도 상대가 행복해지겠다는 느낌.”
“어휴, 바쁘신 분이.”
뜨거운 어묵국을 서동수 앞에 놓으면서 최정현이 웃었다.
“TV를 보니까 대마도 때문에 정신없으시던데 여기까지 오셔서.”
서동수가 어묵국을 한 수저 떠먹고는 따라 웃었다. 편안해지는 건 사실이다. 장사가 신통치 않은데도 열심히 사는 최정현을 보면 자극이 일어난다. 비서실에서 조사해온 최정현의 결혼생활은 불행했다. 돈이 없다고 다 불행한 것은 아니다. 최정현의 전남편 양준기는 알코올 중독이 되자 온갖 행패를 다 부렸다. 선량한 인간이 짐승으로 변한 것이다.
“잘될 거야.”
잔에 술을 따르면서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양준기는 신의주에 못 와. 내가 지시를 해놓았거든. 이게 바로 현실이지, 알아?”
숨을 죽인 최정현이 시선만 주었으므로 서동수가 술잔을 들고 빙그레 웃었다.
“내가 장관이라는 현실 말이야.”
최정현이 신의주에 온 것은 새 생활을 위한 것이 맞다. 양준기가 없는 곳에서의 새 생활이다. 이혼한 후에도 양준기는 끊임없이 최정현을 쫓아다녔다. 최정현은 계속해서 도망쳤고 나중에는 경찰에 신고해서 양준기가 세 번이나 구속되기도 했다. 하지만 교도소에서 나오면 바로 찾아오는 것이다. 한입에 술을 삼킨 서동수가 최정현을 보았다.
“내가 다섯 번째 왔다고 했지?”
“네.”
“두 번째 왔을 때 그 이야기를 해주려고 했는데 못 했어.”
“…….”
“해주고 나면 다시 올 핑계가 없을 것 같아서 미안.”
“…….”
“이제는 아까 조개탕 먹은 것으로 대신하고 다시 못 올 것 같다.”
“…….”
“다 그런 거야.”
서동수가 손목시계를 보았다. 10시가 조금 넘었다. 이제 포장마차에 손님이 모일 시간이다. 이곳은 지금부터 새벽 3시까지가 붐비는 것이다. 그때 최정현이 말했다.
“저기요, 장관님.”
최정현이 서동수를 똑바로 보았다. 눈 밑이 조금 붉어진 것 같다.
“장소만 알려주시면 갈게요.”
저절로 숨이 들이켜진 서동수의 얼굴이 굳어졌다. 최정현이 눈도 깜박이지 않고 말을 잇는다.
“신의주 어디든지요.”
그때 서동수가 폐 안에 담고 있던 숨을 길게 뱉어내고 말했다.
“됐다. 내가 그 말, 저금해 놓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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