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준 / 논설위원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7∼18일 방한 기간 내내 입에 달고 다닌 말이 있다. ‘한·미(韓美) 글로벌 파트너십’이다. 케리 장관은 17일 서울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에 들어서면서 방명록에 “한·미 양국의 글로벌 파트너십이 확대되기를 기대한다”고 서명한 것을 시작으로, 거의 모든 모임에서 이 단어를 입에 올렸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 방한 때도 케리는 “한·미 관계가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해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얼핏 들으면 별문제가 없어 보이는 ‘글로벌 파트너십’이란 말에는 엄청난 의미가 내포돼 있다. 지금까지의 한·미 동맹은 ‘한반도에서의 안보동맹’이었다. 그리고 서로 돕는 관계라기보다는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는 관계였다. 그런데 이런 한·미 동맹을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확대·강화하자는 것은 한·미 동맹의 지역적 범위를 한반도를 넘어 전 지구적으로 넓히고, 내용적 범위도 군사 분야만이 아니라, 개발협력·기후변화·과학기술 및 우주탐험 등 모든 영역으로 확대시키자는 것이다.

한국도 이제 어느 정도 컸으니, 도움만 받지 말고 미국의 세계 경영에 협조하라는 이야기다. 즉, 미국의 대(對)이슬람국가(IS) 대응에 기여하고, 우크라이나 사태·기후협약 등의 문제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추자는 것으로, 미국의 글로벌 거버넌스에 ‘피와 돈’을 분담하고 참여하란 말이다. 물론 모든 문제에서 미국과 입장을 같이할 수는 없다. 양국의 국익과 이해가 다른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아쉬울 때 돕지 않으면서, 미국의 도움만 받으려 한다는 느낌을 줄 때 양국 관계가 발전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최근 미·일 관계가 찹떡궁합처럼 발전한 것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4월 미국을 방문해 자위대의 미군과의 협력을 전 세계로 확장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는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을 비교하며, 미국이 일본 쪽으로 기울었다고 불평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 볼 때, 답은 명확하다. 자신의 직접적 문제에만 협력하겠다는 한국보다 직접 이해관계가 없더라도 협조하겠다는 일본 쪽이 더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동안 한·미 동맹이 굳건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 덕분이었다. 도움이 절실했던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이 ‘피’로써 도와줬던 것이다. 1997년 ‘IMF 경제위기’ 당시 미국 재무부는 한국을 외면하려 했다. 그런 재무부를 설득한 것이 미국 국방부였다고 한다.

다음 달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국제관계에서도 공짜는 없다. 미국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할 수 있는 존재임을 각인시켜야 한다. 또 미국은 ‘파워 폴리틱스(Power Politics)’에 입각한 현실주의 노선을 따르면서도, 항상 ‘윌슨주의적 이상주의’를 내면에 깔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가치와 이념이 배제된 현실주의는 미국인에게 경멸의 대상이다. 따라서 ‘자유’와 ‘민주’를 중심으로 한 ‘가치동맹’을 강조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박쥐’가 아님을 알릴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가치동맹 속에서 미국의 글로벌 거버넌스에 참여할 때, 비로소 한·미 간에 진정으로 “빛이 새나갈 틈이 없게” 될 것이다. sjhwa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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