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종기 시집‘마흔두 개…’도 출간
마종기(76·사진) 시인의 눈가엔 시작부터 눈물이 맺혔다. 26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다. 이날 자리는 그의 열한 번째 시집 ‘마흔두 개의 초록’(문학과지성사)의 출간과 부친 마해송(1905∼1966)의 전집(전 10권·문학과 지성사) 완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전집이 나와서 정말 행복하다”고 한 뒤 감정이 복받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동문학가 마해송은 한국 아동문학이 전래동화 개작 수준에 머물렀던 1920년대 창작동화의 길을 열었다. 1923년 국내 최초 창작동화 ‘바위나리와 아기별’을 썼다. 열정적인 아동인권운동가이자 언론인, 문예지 편집인이기도 했다. 탄생 100주년이던 2005년 그의 문학적 성취를 기리기 위해 만든 마해송문학상은 올해로 11회째를 맞았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업적에 앞서 죄책감부터 털어놓았다. 시인은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장남임에도 장례를 동생의 손에 맡겼다. 당시 그는 미국에 있었다. 1965년 서울대 의대 대학원을 마치고 공군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시절, 한·일 굴욕외교 반대 서명에 이름을 올린 게 화근이 됐다. 영창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고, 제대 후 쫓기듯 미국으로 건너갔다. 도미한 지 4개월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비행기 삯이 없어 한국에 오지 못했다. 한국에 다시 돌아와 아버지 산소를 찾은 건 5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나 때문에 고생, 고민을 많이 하시다가 돌아가셨다”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만 50년이 되는 올해 전집이 마무리돼 약간의 죄책감이라도 씻게 됐다”고 했다.
전집에는 동화를 비롯해 수필, 칼럼 등 마해송이 작고하기 전까지 남긴 다양한 형식의 글들이 모두 담겼다. 출간되지 않았던 수필 53편도 찾아 넣었다. ‘마해송 전집’ 편집위원회가 꾸려지고 4년이 걸렸다. 편집에 참여한 소설가 원종국은 “작품 편수, 다양한 식견, 해박한 지식, 진솔한 문장들에서 문학예술인이자 언론인, 편집인이었던 마해송 선생의 지성적 면모를 살필 수 있다”고 했다. 마 시인은 전집 출간을 즈음해 책의 저작권, 인세 등을 모두 문학과지성사에 넘겼다. 그는 “아버지의 작품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권리를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현재 마 시인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02년 미 오하이오대 의대 소아병원 부원장으로 은퇴할 때까지 36년간 의사로 살았지만, 틈틈이 출간한 시집은 한국문학작가상·편운문학상·현대문학상·이산문학상 등을 수상하는 등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2010년 ‘하늘의 맨살’ 이후 5년 만에 나온 이번 시집은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낸다. 그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의미를 많이 찾는 편”이라며 “그것이 세상을 사는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가슴을 저민다. 그의 어머니는 한국 현대무용의 선구자 박외선(1915∼2011) 씨다. 모친의 임종 전 느낀 감상을 ‘어머니의 세상’ ‘어머니, 자유, 9월의 긴 여행’ 등 여러 편의 시에 담았다.
나이 듦은 시집을 관통하는 주제다. ‘검정 넥타이’ ‘개꿈’ ‘저녁 올레길’ ‘나이 든 고막’ 등 시는 친구의 죽음과 노년에 대해 노래한다. 그는 덜컥 간담회에선 “요즘 시가 좀 길어지고 시인으로서 역량이 떨어져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면서 “엉터리 시를 쓸까 봐 겁이 나 나이를 어느 정도 먹으면 천천히 써야겠구나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그의 솔직함에서 오히려 깊은 연륜이 묻어났다. 시에서는 이런 농담도 건넨다. “주위에서는 귀 검사를 해보라고 하지만/ 그런 것 안 해도 알지, 내가 의사 아닌가./ 그보다는 늙은 고막이 오히려 고마운 걸./ 시끄러운 소리 일일이 듣지 않아도 되고/ 잔소리에 응답을 안 해도 되는 딴청,/ 언제부턴가 깊고 은은한 소리만 즐겨 듣는다.”(‘나이 든 고막’ 중에서)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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