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테러, 살인과 마약 밀매 등은 반(反)국가·반사회 범죄의 전형이다. 그러나 미국·영국·독일·일본 등과는 달리 이런 범행을 추적하는 수사기관의 휴대전화 감청 수단이 사실상 없어 임무 수행에 지장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시도는 제16대 국회 이래 발의와 임기 만료 폐기를 되풀이해왔다. 그 사이 휴대전화는 더 압도적인 통신 수단이 됐고, 이를 악용한 범행 수법은 갈수록 첨단화·지능화하고 있다. 그만큼 검·경, 국가정보원의 대응이 아날로그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도 커졌다.

현행 통비법 제3조 2항도 범죄 수사 또는 국가안전보장을 위한 보충적 수단으로서 휴대전화 감청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법원이 감청 영장을 발부해도 장비가 없어 감청 자체가 불가능하다. 2002년 국정원의 폐기 이래 국내에 감청 장비가 없기 때문이다.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이 1일 이동통신사의 감청장비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개정 법안을 대표 발의한 것도 그 ‘공백(空白)’을 메우는 입법 보완의 일환이다. 발의안은 이동통신사의 장비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면서 설치 의무를 간접 강제하는 내용이다. 지난해 1월 3일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해 1월 6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 회부돼 11월 21일에야 상정된 개정 법안과도 유사해 국민적 관심을 거듭 환기시킨다.

국가기관의 불법 도청은 1999년 김대중정부 이래 국민적 트라우마가 돼왔다. 박 의원도 발의에 앞서 21일 안보와 범죄 수사를 위한 감청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찬성 41.1%, 반대 42.4%라는 리얼미터 조사 결과를 먼저 밝힐 정도다. 누군가 자신의 전화를 엿듣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회는 불법 도청과 인권 침해 소지를 방지할 엄격한 장치를 함께 마련하면서 휴대전화 합법 감청의 길을 열기 바란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