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9일 오전 8시 30분 강원 홍천군 두촌면 자은2리 마을회관 앞. 인적 드문 산골 마을에 70대 주민 5명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모처럼의 활기가 어색한 듯 이 중 한 주민이 “우리 아기들 올 때가 됐는데”라고 말하자 주변 사람들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잠시 후 오전 9시쯤 들어선 대형 버스에서는 이날 1사1촌 일손돕기를 위해 이 마을 결연회사인 현대글로비스 직원 40여 명이 내렸다. 20∼30대 초반 직원이 대부분인 이들은 처음에는 조금 낯선 눈치였지만 금세 긴장을 풀고 떠들썩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이날 현대글로비스 직원 40명 중 10명은 올해 입사한 신입사원이었고 나머지 인원 역시 상당수가 5∼6년 차 이하 젊은 직원들이었다. 2007년 결연한 뒤 올해로 9년째를 맞아 매년 ‘그 얼굴이 그 얼굴’일 법한데도 올 때마다 등장하는 새 얼굴을 마을 주민들은 반갑게 맞았다.
두촌면 노인회장인 이승만(86) 씨는 “8년간 한 해도 허투루 오지 않아서 무척 고맙다”며 “매년 젊은 사람들이 새롭게 등장하니 시간이 멈춰 있는 듯, 나 역시 늙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끼를 챙겨 입고 조를 짤 때쯤 장정 3명이 이 씨에게 다가왔다. 이들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 앞이라 약간은 쑥스러운 듯 “지난해에 와서 할아버지와 일한 기억이 있다”며 “올해도 다시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씨는 쭈뼛거리면서도 먼저 다가오는 손자뻘 직원들에게 “나야 좋지”라고 짤막한 대답을 건넸다. 표현은 서툴렀지만 먼저 손을 내민 어린 친구들이 대견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이 씨는 들떠 있었다.
다른 1사1촌 행사와 비교해 현대글로비스 일행에 젊은 피가 대거 포진한 데는 직원들에게 골고루 기회를 주자는 회사 방침이 한몫했다. 이 씨와 함께 옥수수밭으로 이동한 박건호(32) 대리는 올해 6년 차 직원으로 이날이 3번째 자은2리 방문이었다. 박 대리는 “신입사원 때 처음 방문한 뒤 매년 오고 싶었지만 인원은 한정돼 있고 지원자는 많은 상황에서 몇 년간 기회를 넘길 수밖에 없었다”며 “되도록 많은 직원에게 기회를 주려는 회사 방침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연속으로 자은2리에 온 입사 4년 차 이성환(32) 사원은 “전에 만난 주민들이 반가워 나도 모르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며 “2년 연속 참가가 흔한 기회가 아닌 만큼 열심히 하겠다”고 밝혔다.
현대글로비스 측은 일행의 젊은 직원 비율은 회사의 최근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1사1촌을 추진한 2006년 약 350명이던 총 직원 수는 2014년 900명으로 늘었다.
이번 1사1촌에 참여한 10명의 신입사원은 올해 뽑힌 전체 52명 중 일부에 불과했다. 지난 1월 입사한 막내 정환기(27) 사원은 “함께하지 못한 동기는 아쉬워하면서 그 대신 회사에서 실시하는 양로원 봉사에 가기로 했다”며 “다음번에는 나와 자리를 바꿀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글로비스의 젊은 일행 구성은 제대로 일할 사람을 차출했다는 뜻으로도 풀이됐다. 호박밭에서 직원들을 진두지휘하던 주민 김정환(51) 씨는 “우리 마을은 특히 적은 인구에 노인이 많아 이제나저제나 젊은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했다”며 “자칫 형식적인 농촌체험으로 흘러 농민들에게 오히려 일만 불려주기 쉬운 이런 행사가 현대글로비스 덕에 진짜 일손돕기가 됐다”고 고마워했다.
진지한 분위기는 일터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었다. 우영주 이사 등 임원진 2명은 회사에서는 비교적 ‘높은 신분’이었지만 이날만큼은 평범한 일꾼으로 작업에 참여했다. 직원들 틈에서 고추 지지대 박기에 여념이 없던 우 이사는 “이건 봉사가 아니라 우리가 배우는 것”이라며 “열심히 일하면서 공동체 의식을 기르고 간다”고 말했다.
힘 넘치는 일손을 이용해 고난도 작업에 속하는 비닐하우스 설치도 이뤄졌다. 일정 간격으로 바닥에 구멍을 뚫은 뒤 성인 2명이 간신히 들 수 있는 비닐하우스 지지대를 옮겨 꽂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지지대가 방향을 잃고 기울기 일쑤였지만 30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어느덧 능숙한 속도로 작업이 진행됐다.
주민 배상철(60) 씨는 “젊은 사람들이라 한 번 알려 줬는데 습득력이 빠르다”며 “이 일을 혼자 한다고 생각하면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현대글로비스는 1사1촌 행사 때마다 주민들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며 식사도 스스로 마련하고 있다. 점심시간이 되자 마을회관에서는 현대글로비스가 준비한 삼계탕으로 주민들이 모여 잔칫상을 벌였다.
“식사 정도는 우리가 준비하는 게 도리인데 해준 것 없이 매번 받기만 해서 미안하다”고 연신 고마워하는 김동손 자은2리 이장에게 회사 관계자는 “일 서투른 도시 사람들 밥을 준비한다고 어르신들을 고생시키는 게 더 미안한 일”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김 이장은 “좋은 동반자를 만난 우리 마을은 참 복이 많다”며 “세대를 이어서도 변치 않는 관계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istandby4u@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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