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전통적인 국가권력의 범죄 통제력으로는 제어하기 어려운 고위험범죄가 빈발하고 있다. 특히, 초국가적 폭력 조직이나 테러범죄 조직은 정부에 맞먹는 유사 조직 체계를 갖추고 범죄 세계에 등장해 그 위험성을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형법 및 형사정책도 획기적으로 변해 왔다. 개인의 자유와 안전에 중점을 두던 전통적 자유 법치국가 형법은 현대에 이르러 사회적 복지국가 형법으로, 그리고 후기 현대사회에 이르러 안전 위주의 예방(豫防) 형법으로 변모를 거듭하고 있다.
20세기 후반 서구의 사회복지국가 모델은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에 이르러 각국의 재정위기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국가의 역할과 정책에 대한 심각한 변화를 모색했다. 시장실패와 정부실패를 경험한 나라들은 신자유주의 이념에 입각한 국가 기능의 광범위한 민간 이양을 멈추고, 재정 자원의 효율적인 재분배와 사회보장 제도의 재편에 손을 대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나아가 환경 보호, 테러 예방, 시민 생활의 위험원 통제와 예방 등 새로운 국가 질서 모델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예컨대 예방국가, 안전국가, 조정국가 내지 네트워크 국가에 관한 담론 등이 그것이다.
안전국가의 안전 형법관(觀)은 종래 개인의 행위책임에 기반을 둔 진압적 사법의 한계를 뛰어넘어 위험에 기반을 둔 예방적·감시적 사법으로 나아간다. 삼진아웃법 및 가석방 없는 종신형, 최저 몇 년 이상의 징역형과 신상공개·전자발찌·화학적 거세 제도 등이 그 실례다. 더 나아가 형사소송법상의 효과적인 범죄 예방과 범인의 수배·검거를 위한 강제처분권이 개인의 자유보다 사회의 안전에 유리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수사기관의 손이 개인의 사생활 영역까지 파고들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수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조기 강제처분권의 전진 배치, 전화 감청, 인터넷 비밀검색, 비디오 감시, 신분위장 수사관 투입 허용범위 확대 등의 조치가 늘고 있다. 결과적으로 개인은 추정된 위험에 대한 자유 제한 조치도 감수해야 할 뿐만 아니라, 데이터 보관이나 휴대전화 감청설비 구비 의무 같은 부담을 새로이 져야 할 처지다.
최근 들어 법무부에서도 안보형사법제 재정비 차원에서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 부여, 안보범죄 신고자 신변보호 확대 및 통신사업자 감청 협조 설비 구비 의무 부여 방안 등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월 새누리당 김도읍 의원이 대표 발의한 ‘특정범죄자 신고 등 보호법 일부 개정안’, 지난 5월 같은 당 김진태 의원의 ‘형소법 일부 개정안’, 지난해 1월에 같은 당 서상기 의원이 대표 발의했고 6월 1일 같은 당 박민식 의원이 대표 발의한 ‘통신비밀 보호법 일부 개정안’ 등은 이와 궤를 같이하는 입법 노력의 하나다.
휴대전화 감청은 현행 통비법 제2조 2항에 따라 범죄 수사 또는 국가안보를 위한 보충수단으로 허용된다. 하지만 2002년 국가정보원이 도청 파문을 겪으며 감청 장치를 폐기한 이후, 국내에 감청 장치가 따로 없고, 민간 통신사업자도 감청 장비를 보유해야 할 의무가 없어, 실제 수사기관이 법원으로부터 감청영장을 발부받았어도 휴대전화 감청 자체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뛰는 수사 기법 가지고 나는 범죄 수법을 따라잡기는 어렵다. 인권 선진국들의 안전정책을 비교 검토해 적어도 내란음모, 간첩 등 안보 위해(危害) 사범이나 살인·납치 등 강력범죄, 마약 제조·밀매를 포함한 고위험 범죄에는 휴대전화 감청까지 가능한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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