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DC 시의회는 반년 동안의 갑론을박 끝에 지난 2일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저소득층 대상 경구피임약 배포기간을 기존 최대 3개월에서 1년 분량으로 확대하는 방안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법안은 민주당 소속 뮤리엘 바우저(42) 시장의 책상으로 갔다. 바우저 시장이 서명을 하면 정식법안으로 효력이 발효될 예정이다.

얼핏 보면 별다른 사안이 아니다 싶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고민은 간단치 않다. 무엇보다 법안은 워싱턴 DC의 10대 소녀 출산율을 낮추려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미국 보건사회복지성(HHS)에 따르면 워싱턴 DC의 15~19세 소녀 출산율은 1000명당 92.8명(2011년 기준)에 달한다. 미국 10대 소녀 출산율 평균인 31.3명의 거의 3배에 이르는 규모다. 시의회 건강위원회의 이베트 알렉산더 위원장은 “10대 소녀 출산율을 낮추기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법은 임신을 막기 위해 입으로 복용하는 경구피임약 배포기간의 확대였다. 피임약이 손이 닿는 위치 곳곳에 있다면 10대 소녀들의 임신도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다. 2011년 발행된 산부인과학저널의 연구조사가 근거로 제시됐다. 저소득층 여성들에게 1년 동안 피임약을 배포하는 공공 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임신율이 30%나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론들도 만만치 않다. 시에서 운영하는 건강센터에서 한 번에 1년치 경구피임약을 받아 장기복용하면 각종 부작용으로 건강을 해친다는 우려다. 다른 산부인과 질환의 검진율도 떨어질 여지가 있다.

여성 흑인 정치인인 바우저 시장은 현재로서는 법안에 서명할 것으로 관측된다. 워싱턴 DC는 이상과 이념을 선도하는 세계도시, 코스모폴리스다.

하지만 빈부격차와 인종갈등, 약물중독의 온갖 난제가 자라나는 미래 도시도 보여준다. 쓸데없는 책상 앞 기우(杞憂)인지도 모르겠지만 약물 ‘프로지움’으로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조절·조정하는 영화 ‘이퀼리브리엄’의 영상이 겹쳐진다. 100년 뒤 워싱턴 DC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이제교 특파원 jklee@munhwa.com
이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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