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 논설위원

국가 재난 상황이나 을지훈련 때가 되면 대통령을 비롯한 장관 등 공직자들은 노란색 점퍼를 입는다. ‘민방위 복(服)’인 이 점퍼는 재난 현장에서는 공직(公職)의 상징처럼 인식된다. 지난 1975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민방위 제도가 만들어지면서 공직자들은 칙칙한 카키색의 민방위 복을 30년 동안 입다가 지난 2005년 현재와 같은 노란색(정확히는 라임색)으로 색깔과 디자인이 바뀌었다. 노란색은 빛에 가장 가까운 색으로 긍정적이고 자신감이 있으며 명랑, 활동성, 기쁨과 희망을 나타낸다고 한다.

혼란스럽고 절망적인 재난 지역에서 시민들이 노란 점퍼를 입은 공직자를 보면 안정감과 희망을 갖는 것도 ‘정부가 나섰다’는 신호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 이 옷을 입고 나타나면 뭔가 비상한 상황이란 뜻이기도 하다. 지난해 4월 17일 세월호가 침몰한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은 이 옷을 입고 진도 팽목항 현장을 방문했고, 지난 3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발생 15일 만에 청와대에서 민관합동 긴급회의를 주재할 때도 같은 옷을 입고 나타났다. 그러나 신뢰, 믿음의 상징이어야 할 이 노란 점퍼가 이번 사태에서는 무능과 불신의 상징처럼 되고 있다. 초기 대응은 물론 일련의 대처 과정에서 국민 신뢰를 잃었다.

메르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사망자가 나오고서야 박 대통령은 노란 점퍼를 입었다. 세월호 침몰 때도 7시간 뒤에 박 대통령이 이 점퍼를 입고 중앙재난대책본부에 나타났다. 지난 2010년 4월 미국 루이지애나주 멕시코만에 있는 세계적인 석유회사인 BP의 딥워터 호라이즌 석유 시추 시설이 폭발했을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검은색 점퍼를 입고 현장에 나타났다.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우산도 쓰지 않고 비를 흠뻑 맞으며 기자회견 하는 모습이 생중계됐다. 사고 자체는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재난 현장 앞에서 비를 맞으며 기자회견 하는 모습 하나로 미국 국민은 안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메르스와 같은 감염병은 그야말로 전문가들의 영역이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는 민심(民心)을 관리하는 것이 급선무다. 오바마 대통령이 에볼라 사태 때 의료진을 직접 껴안으면서 국민을 안심시키는 이벤트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은 메르스보다 무능한 정부를 더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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