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 / 정치부장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으로 국민 우려가 깊어지면서 여야가 국회법 개정안 위헌 논란과 관련, 접점을 찾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견 비상한 상황에서 정쟁에 골몰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행보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가 되고 있는 국회법 개정안 제98조의 2 제3항을 법률적으로 엄격하게 해석하면 ‘위헌 소지’나 ‘정치적 악용 가능성’을 우려하는 청와대를 설득할 정치적 합의를 이뤄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문제의 조항은 국회 상임위가 행정입법의 수정·변경을 소관 중앙행정부처의 장에게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행령 제정 권한은 행정부에 있지만 시행령은 국회가 제정한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만들어야 하는 만큼 시행령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는지를 국회가 살펴보는 것은 당연한 권한이다. 문제는 ‘소관 부처의 장은 요구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상임위에 보고해야 한다’는 대목이 강제성을 띠느냐이다. 미국의 경우 의회가 시행령에 대해 입법적 거부권을 행사하면 해당 시행령은 자동으로 무효화 된다. 그런데 문제의 조항은 행정부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지만 국회의 수정·변경 요구가 즉각 해당 시행령의 효력 정지로 이어진다고 규정하진 않는다. 또 ‘처리’의 의미가 상임위의 요구대로 ‘수정·변경’하는 것인지, 일부 수정이나 수정 없는 ‘재검토’도 포함하는 것인지 불명확하다. 더구나 ‘처리’를 하지 않거나 ‘처리 결과’를 보고하지 않을 경우 해당 시행령이 자동 폐기된다든지 소관 부처의 장을 처벌하는 규정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리고 일반인 대상 여론조사에서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는 답변(35.7%)이 ‘위배되지 않는다’는 답변(29.9%)을 앞서는 이유는 ‘국회의 원죄’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간 국회는 정파적 이해나 집단 이기주의에 얽매여 국회법은 물론 헌법과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는 정치행태를 되풀이해왔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 요구에 아랑곳하지 않고 개인과 기업의 기본권 침해 소지가 다분한 과잉입법을 남발했고 민생이나 국정 우선순위와 무관하게 자신의 지역구에 도움이 되는 법안을 발의하는 등 포퓰리즘 입법 행태를 이어오고 있다. 그 결과 지난 1988년 헌법재판소 출범 이후 27년간 법률에 대한 위헌 결정이 무려 518건에 달했고 헌법불합치(사실상 위헌이지만 사회적 혼란 방지를 위해 한시적으로 법안 존속) 결정도 165건에 이른다.

더구나 지난 2012년 만들어진 ‘국회선진화법’은 행정부의 정상적인 행정집행을 저해하는 수준을 넘어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훼손하는 법안이다. 이 법은 원칙적으로 여야 간 합의가 이뤄져야만 법안 상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우회 통로인 의장직권 상정 요건은 천재지변, 전시·사변 발생 시로 한정해 통상적인 상황에서의 이용을 원천 봉쇄했다. 더구나 ‘안건신속처리제’라는 제도를 신설하긴 했지만 요건을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규정했다. 비록 다수당이라도 5분의 3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야당의 동의 없이는 법안의 상정조차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국회는 다수 여당이 소수 야당에 끌려다니는 식으로 운영되고 그런 국회가 부실·탈법·과잉 입법행위 등을 통해 정부의 행정행위를 제한·왜곡하는 악순환이 계속돼왔다. 국회법 개정안의 문제 조항이 현실 정치에서 법률적 강제성 이상의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우려를 탓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져 온 것이다.

따라서 국회, 특히 야당은 합헌이나 여야 합의를 이유로 국회법 개정안 재논의를 무조건 거부해서는 안 된다. 여야는 최소한 국회법 개정안을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않겠다고 합의하고 이를 국민에게 약속해야 한다. 나아가 국회법 개정안의 합헌을 주장하려면 국회선진화법 개정에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 대의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을 전제하지 않고 존재할 수 없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여대야소 구도를 만들 때는 국정의 효율적 운영을, 반대로 여소야대 구도를 만들 때는 국회에 의한 정부의 견제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소수당이 다수당을 마음대로 쥐고 흔들고 그렇게 운영되는 국회가 다시 정부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유권자의 표심, 즉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이렇게 민심을 외면하는 정당은 결코 다음 선거에서 선택을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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