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시작되는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나왔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대한 정부 대응을 보면 그런 지적이 나올 만도 하다. 첫 확진 이후 20일이 됐음에도 ‘컨트롤타워’조차 제대로 작동 않는데, 대통령마저 국내에 없으면 더 한심한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철하게 따져볼 때 현 상황에서 방미(訪美)를 연기할 이유는 없다.

첫째, 의학적·이성적 차원에서 정상외교 활동을 중단할 정도는 아니다. 미지의 전염병이어서 경계를 늦춰선 안 되겠지만, 그 심각성이 ‘독감 정도’임이 완치 환자 증언 등을 통해 밝혀지고 국민도 막연한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8일 “한국 여행 계획 변경을 권장하지 않는다”면서 한국을 수족구병이 발병한 일본, 조류 인플루엔자가 유행하는 중국, 홍역이 발생한 독일 등과 동급인 ‘1단계 여행 주의 국가’로 분류해 놓고 있다.

둘째, 이 정도 상황에서 정상 외교를 취소하는 것은 외교적 난센스에 가깝다. 국제사회는 한국의 메르스 문제가 정말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을 ‘겁쟁이 나라’로 인식할 것이다. 어느 쪽도 바람직하지 않다. 필요하다면 전쟁 상황에서도 정상외교를 벌이는 것이 정상이다. 물론 이번 방미 자체에 대한 평가는 별개의 문제다.

셋째, 방미를 연기하면 국민의 메르스 공포를 증폭시켜 사회적·경제적 공황을 더 키울 뿐이다. 지금 박 대통령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메르스 사태에 빈틈없이 대처하면서, 국민이 안심하고 일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대통령 방미와 무관하게 정부가 할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

새로운 중대 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면 박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하는 것이 옳다. 불필요한 일정은 과감히 줄이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실질적 대화에 집중함으로써 국민에게 방미의 중요성을 납득시켜야 할 것이다. 북핵 제재, 일본의 과거사 문제 등에 실질적 진전을 이루고, 한국이 중국에 기울고 있다는 미국 일각의 오해도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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