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배롱나무가 빼곡한 전남 담양군의 명옥헌 원림 정자마루에서 탐방객들이 초여름 더위를 식히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식영정 옆 부용정의 연못에 어리연꽃이 동그란 잎을 띄워놓고 있는 모습. 신창섭 기자 bluesky@munhwa.com
6월의 산과 들은 풍요롭다. 아니, 풍만하다. 효모를 넣고 밤을 지낸 밀가루 반죽처럼 잔뜩 부풀어 있다. 풍만은 농염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한고비 넘어 세상을 좀 알 것 같다는 여인의 표정을 닮았다. 그 풍경 속을 달린다. 전라남도 담양으로 가는 길이다.
담양하면 정자와 정원이 먼저 떠오른다. 면앙정·송강정·식영정·소쇄원·명옥헌원림…. 유독 담양에 정자와 정원이 많은 것은 선비들이 은거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담양으로 가는 길은 선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하다.
선비는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대의를 위해서는 칼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기개’로 설명되고는 한다. 그들은 또 때가 아닌 줄 알면 물러나 자연 속에 묻혔다. 돌아온 이들을 넉넉한 품으로 안아주었던 곳이 담양 땅이다. 선비들은 떠났지만 정자와 정원은 남아 있다.
#죽녹원 = 선비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먼저 들러봐야 할 정원이 죽녹원이다. 대나무의 고장인 담양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입구를 지나 대숲에 들자마자 서늘한 기운이 몸을 감싼다. 땀이 슬그머니 꼬리를 감춘다. 2013년 조성된 이곳은 18만3000㎡의 대숲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다.
숲에는 8개의 오솔길이 있다. 물론 어디를 택해도 상관없다.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전부 도는 데는 40분,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한옥쉼터에서 오른쪽과 왼쪽을 놓고 잠깐 고민하다 왼쪽 길을 택한다. 국내에서 가장 크다는 맹종죽들이 도열해 있다. 속이 빈 나무들이 어떻게 이만큼 자랄 수 있을까. 고개가 아프도록 올려다본다. 정자 앞에서 길은 헤어지고 또 만난다. 한옥체험장 방향으로 가는 길을 택한다. 이곳은 계획적으로 조성한 정원 속의 정원이다. 정자에 앉아 쉬며 스스로 풍경이 된다.
다시 대숲으로 든다. 가뭄 속에서도 죽순이 땅을 열고 속속 고개를 내민다. 그들에게서 강렬한 생의 의지를 읽는다. 그래, 살아야지. 살아야 실패도 성공도 해볼 것 아닌가. 살겠다는 의지 앞에서는 절망조차 희망인 것을. 대숲 안에서는 손바닥만 한 햇빛도 귀하게 보인다. 빽빽한 댓잎 사이를 뚫고 내려온 햇살을 당겨 안고서 키 작은 나무들이 자란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잎을 자꾸 넓힌다. 그늘 속에 있으면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인공폭포를 지나고 정자와 쉼터, 놀이터를 지나 ‘운수대통길’로 접어들면 거의 한 바퀴 돈 셈이다. 생태전시관에서 대숲을 빠져나온다. 마음까지 푸르게 물든 것 같다. 찌뿌드드했던 몸도 한결 가뿐해졌다.
대나무의 고장 담양의 상징으로 통하는 죽녹원. 한낮에도 햇살이 귀할 만큼 울창한 대숲속을 방문객들이 걷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면앙정 = 누가 하늘에 비질을 했을까? 구름이 가지런하다. 숨을 헐떡거릴 만큼 계단을 오르고서야 정자 하나가 나타난다. 조선 중기의 문신 송순이 벼슬을 놓고 내려와 여생을 보낸 곳이자 면앙정가의 산실 명앙정이다.
정자 주변에는 상수리나무·굴참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200년이 넘은 아름드리나무들도 있다. 정자의 뒤편에 서야 이곳 풍경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눈앞으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들이 끝나는 곳에 산들이 어깨를 겯고 달린다. 저곳 어디쯤이 면앙정가에 나오는 제월봉(霽月峯)이겠지. 바람결이 곱다. 뜰에 구르는 햇살도 정겹다.
마루에 앉아 시선을 멀리 둔다. 옛사람의 숨결을 느끼며 그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가슴 뛰는 일이다. 기억나는 대로 면앙정가의 한 구절을 읊조린다. ‘无等山(무등산) 한 활기 뫼히 동다히로 버더 이셔 멀리 쎄쳐 와 霽月峯(제월봉)이 되어거날…’
기둥은 낡고 마루의 주름이 깊어졌어도 옛 선비의 올곧은 뜻은 여전히 생생하다. 일어나기 싫다. 참나무 굵은 가지에 그네를 매고 세월이나 띄웠으면 좋겠다.
#송강정 =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의 고향, 송강정으로 오르는 계단은 설렘으로 시작한다. 야트막한 산에 안겨 용트림하듯 키를 재는 소나무들, 그리고 그들이 내뿜는 솔 향이 예사롭지 않다. 아! 그러고 보니 이곳의 주인이 송강(松江)이었구나. 소나무들의 기상이 우연은 아니겠다. 송강 정철.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며 이 길을 오르내렸을까. 모르긴 몰라도 울화를 눅이는 게 먼저였을 것이다. 동인-서인의 싸움 끝에 물러나 초막을 짓고 살던 곳에 세운 정자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송강정은 영조 46년(1770) 후손들이 송강을 기리기 위해 지은 것이다. 원래의 초막은 죽록정(竹綠亭)이라 불렀다.
역시 정자를 세울만한 풍광이다.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들판은 넓고 시원하다. 멀고 가까운 곳을 지그시 바라보며 이 자리에 서 있었을 중년의 사내를 생각한다. 권력을 잃은 뒤의 금단과 임금의 사랑을 잃은 뒤의 참담, 사람에 대한 실망은 또 오죽했으랴. 그런 고통이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의 뿌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시련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명옥헌원림 = 연못이 먼저 손 내밀어 객을 맞이한다. 그 한가운데에는 인공 섬이 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울울한 숲. 굵은 몸통의 소나무들이 허리 굽혀 인사한다. 하지만 이 숲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배롱나무다. 명옥헌원림이 품어온 시간을 말하듯, 늙은 나무들은 단장을 짚고 땅에 가까워졌다. 배롱나무 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뒷산 뻐꾸기가 꽃을 내라 자꾸 조르지만 묵묵부답이다. 7월이나 돼야 꽃잎을 열어 석 달 열흘 동안 세상을 붉게 물들일 것이다.
식영정 언덕 아래 부용정에서 판소리 보존회 회원들이 판소리를 부르며 풍류를 즐기고 있다.
명옥헌원림은 조선 중기의 문신 오희도를 기리기 위해 그의 넷째 아들인 오이정이 조성했다. 언덕을 올라 명옥헌에 이른다. 연못을 바라보고 서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정자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따라가 본다. 작은 내가 흐르고 물줄기가 작은 폭포를 이루고 있다. 수량은 많지 않아도 물소리가 제법 야무지다. ‘물이 흐르면 옥구슬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고 해서 명옥헌(鳴玉軒)이라고 했다던가?
정자 위에도 석산(石山)을 앉힌 작은 연못이 있다. 배롱나무 숲을 한 바퀴 돌고 내려와 정자 마루에 앉는다. 녹음이 아우성치며 세상을 색칠하고 있다. 가기 싫은 마음을 안다는 듯 허리 굽은 배롱나무가 손을 흔들며 웃는다.
#식영정 = 그림자도 쉰다는(息影) 정자, 그래서 식영정이다. 그냥 가라고 등을 밀어도 쉬어가고 싶은 곳이다. 담양의 정자 중 풍광이 가장 좋은 곳을 꼽으라면 맨 먼저 떠오를 게 틀림없다. 정자 앞을 흐르는 증암천과 너른 광주호는 가뭄 속에서도 빼어난 풍경을 연출한다.
조선 명종 15년 서하당 김성원이 장인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었다는 식영정 역시 정철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성산별곡이 이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정철은 이곳 성산에서 머물면서 성산별곡 외에도 식영정 20영과 식영정잡영 10수 등 숱한 작품을 남겼다.
정자 뒤편의 크고 잘생긴 소나무에 자꾸 눈이 간다. 이곳에 올랐던 숱한 문인들을 기억할 것 같은데, 아무리 물어도 묵묵부답이다. 정자는 살림집처럼 소박하다. 일찌감치 올라온 노부부가 마루에 누워 잠들어 있다. 조용히 걸음을 옮겨 계단을 내려간다.
#소쇄원 = 입구의 대숲은 여전히 시원한 바람으로 객을 반긴다. 초가 정자 대봉대를 지나는데 다람쥐 한 마리가 마중 나와 있다. 인공구조물들까지 자연 속으로 스며든 때문일까? 소쇄원의 다람쥐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자연을 얼마나 중시했는지는, 물을 막지 않고 쌓은 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큰 구멍을 내고 쌓은 담 밑으로 막힘없이 흐르는 냇물이 소쇄원을 살아있게 하는 원천이다. 인공구조물을 배제하지 않되 계곡의 원형을 최대한 살려서 정원을 꾸몄다. 겸손한 마음으로 통나무 다리를 건너 제월당으로 향한다.
제월당 마루에 앉아 땀을 들인다. ‘비 갠 뒤 하늘의 맑은 달’을 뜻한다는 이름의 이 소박한 건물은 주인이 거처하며 독서를 즐기던 곳이다.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요모조모 내려다보기 좋다. 마당가에 석류꽃이 붉다. 머지않아 붉은색을 열매에게 주고 떠나겠지. 열매 역시 물려받은 색을 씨에게 주고 떠날 테고. 오고 가는 질서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광풍각으로 내려가다, 배롱나무에게 자리를 양보한 돌담에 시선이 머문다. 대개는 모르고 지나지만, 나는 소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광풍각 왼쪽 마당에서 올려다본 이 담장을 우선으로 친다. 세 갈래로 뻗은 늙은 배롱나무를 위해 담은 허리를 끊었다. 이곳에서는 뭐든지 자연이 먼저다.
소쇄원에서야말로 천천히 음미하듯 걸을 일이다.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까지 선비의 이상을 담았다니 그 뜻이 내게 스며들 때까지 기다려 볼 일이다. 소쇄원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