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걸어서인지 다리가 아파오지만
기어이 떠나려는 노을을 꼭 만나려면
무리를 해서라도 빨리 가야겠어.
모두들 내 시간은 얼마 안 남았다니까.
함께 걸어주어 고마웠어.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정신없이 걸었지.
가끔은 어디 어느 방향인지도 잊은 채
당신과 길이 있어서 걸었던 건지. 오래전
남의 길이 되겠다고 한 나를 용서해줘.
누가 감히 사람의 인도자가 되겠다니!
꽃을 흔드는 미풍이 내 주름살까지 펴주네.
내 옆의 저 장미는 피는 이유를 알 만도 한데
길 건너 저 풀은 왜 흔들리는지
그래, 나는 부끄럽게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신의 은총이거나 자연의 거대한 힘, 그중에서
오직 하나만이 진리라는 것도 나는 모르겠어.
나비가 길목에서 기다린다고 했니?
나는 왜 나비와의 약속을 기억 못하지?
부드러운 네 표정도 한꺼번에 다가오는데
저녁 그림자 어느새 내 올레길을 덮는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약력 : 1939년 일본 도쿄 출생. 1959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시집 ‘조용한 개선’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마흔두 개의 초록’ 등 출간. 한국문학작가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박두진문학상 등 수상.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