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 / 경제산업부장

최근 발표된 SK하이닉스의 ‘임금 공유제’가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노동시장의 구조개혁이 한걸음도 못 내딛고 있는 사이, 한 대기업이 노사 자율협약으로 원청 기업의 임금 인상분을 하청기업(협력사)과 나누는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노조는 매해 임금 인상분의 10%를 협력사 직원들에게 내놓고, 회사도 이에 매칭 그랜트로 10%를 내놓아 인상분의 20%를 협력사와 나누기로 했다. 일단 올해는 임금 인상분(기본급 3.1%) 가운데 노조가 33억 원, 회사가 33억 원을 조성해 모두 66억 원을 5개 협력사에 특별도급비 형태로 지급한다. 이 돈은 협력사 직원들의 처우 개선과 복지에 쓰이게 된다. 협력사들은 다른 곳에 쓰지 않겠다는 협약도 맺는다.

현재 협력사 직원들의 처우는 원청 기업의 50∼60%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한다. SK하이닉스 임직원 2만2000여 명이 자신들의 임금 인상분을 ‘나눔’으로써 5개 협력사 임직원 4000여 명에게 돌아가는 임금 인상 효과는 약 6.5%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이 시대적 요구가 된 지 오래고, 대기업마다 협력사와 다양한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제 몫’을 나누겠다는 노사의 결단은 여태껏 없었다. SK하이닉스의 사내 게시판엔 ‘자랑스러운 결정’이란 글이 올라 있다는데, 그 이상의 칭찬도 아깝지 않다.

대·중소기업의 상생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장기침체의 터널 앞에서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는 한국 경제 재도약을 판가름할 구조개혁의 발판이다.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분할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깨는 것도 여기서 시작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내놓은 ‘한국경제보고서’에서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지적하며, 정규직에 대해 높은 고용 보호를 주요 원인으로 분석했다. 이중구조를 해소하려면,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용을 제한하기보다는 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고용 보호를 줄여야 한다는 게 보고서의 진단이다. 정규직의 ‘결단’이 필요하단 뜻이다.

아무런 대비책 없이 덜컥 도입된 정년 60세 의무화가 연착륙할지 여부도 여기에 달려 있다. 이미 정년 연장은 인건비 부담을 안게 된 기업들이 실적 악화와 더불어 신규 채용을 줄이는 유인으로 작용, 청년층 고용시장을 악화시키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16∼2018년간 기업들은 60여만 명의 청년층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재원을 정년 연장에 써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임금피크제 도입과 임금체계 개편으로 노사가 상생할 길을 찾아야 하는데, 이를 강제할 방안은 노사정위원회의 대타협 실패로 무산된 상태다. 이제는 노사의 자율 결정만 남아 있다.

정규직의 ‘양보’는 자신들의 몫을 빼앗기는 게 아니다. 우리의 아들, 딸, 동생들의 일자리를 위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회사가 장기적으로 판단하고, 정규직이 나눠주지 않는 한 협력사나 청년들에게 돌아갈 몫은 없다. SK하이닉스 노사가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에게 결단을 재촉하고 있다.

oshun@munhwa.com
오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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