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방미(訪美) 연기는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과 정상외교의 중요성 측면에서 단견(短見)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 출국을 불과 나흘 앞둔 10일 “국민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국민 불안을 해소해 나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메르스에 대한 국민의 공포감, 또 정부의 미숙한 대응이 부채질했음을 고려할 때 일리가 있다. 그러나 지도자는 수많은 과제의 경중(輕重)을 가리고, 그 판단에 입각해 합당한 결정을 해야 한다.

최근의 메르스 사태를 의학적·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단기간의 미국 방문까지 취소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많은 외교·의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심지어 야당 원내대표도 그랬다. 물론 일반인이 모르는 거대한 잠재적 위험을 인지했을 수도 있고, 실제로 어떤 심각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정도 상황에서 정상외교를 중단해야 할 정도라면, 국제사회가 대한민국 역량을 어떻게 보겠는가. 전쟁 중에도 대통령이 외국을 방문한 예가 수두룩하다. 동맹 정상외교야말로 대통령이 국민 안전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청와대가 “미국도 이해한다”는 식으로 자위(自慰)하는 것이야말로 한심한 코미디다. 한국 대통령이 못 간다는데 미국이 뭐라고 하겠는가. 사실 이번 방미는 그 시작 단계부터 애매했다. 지난 4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화려한 미국 방문, 여기에다 오는 9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로 한국의 대미(對美) 외교가 뒤처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는 가운데 성사됐다. ‘모양’ 외에 긴급한 현안도 없었다. 그래도 힘들여 추진해 놓고, ‘막연한 공포’에 휩싸여 연기를 요청했다. 한마디로 ‘아니면 말고’식 외교로 비치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국내 정치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외교 포퓰리즘’ 조짐도 있다. 한국 외교가 이런 식이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존재감의 약화를 자초한다. ‘외교 쇄신’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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