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푸어 / 브리짓 슐트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가당치 않은 장밋빛이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추적 조사 결과 남녀를 불문하고 ‘항상 허둥지둥하며 산다’는 응답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한 조사에서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회사 밖에서 친구를 사귈 수 없고, 너무 바빠서 데이트를 못 하고 있으며, 너무 바빠서 수면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영국인 10명 중 4명은 시간 부족을 이유로 디저트가 섹스보다 좋다고 답했지만 그나마 10명 중 8명은 너무 바빠 그 좋아하는 디저트를 먹지 못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너 나 없이 모두 바쁘고, 할 일은 산처럼 쌓이고, 시간은 늘 부족하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워싱턴포스트 기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브리짓 슐트 역시 ‘타임 푸어’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마감에 쫓겨 기사를 쓰다 보면 아이를 학교에서 데려올 시간이고, 아이에게 저녁을 차려주다 보면 중요한 인터뷰 약속 시간이다. “나는 자다가도 해야 할 일이나 미처 못 한 일들이 떠올라서 화들짝 놀라며 깨곤 한다. 이러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내 인생이 잡다한 일 더미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까 걱정이다. 사람이 웃으면 뇌에서 화학물질이 나와 긴장을 풀어준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웃으려 노력했다. 새벽 4시. 침대에 누운 채, 어둠 속에서.”

새벽 4시, 침대에서 혼자 웃는 심정이 어떠했을지. 그는 결국 ‘해도 해도 일이 줄지 않는’ 삶에 백기를 든다. “더는 이렇게 못 살아.” 그리고 잃어버린 시간과 삶을 찾기 위한 탐구에 나선다. 책은 이 같은 탐구 과정의 기록이자 사색이며, 이 모든 것의 보고서다. 자신의 경험, 주변 이야기는 물론 시간·노동·가족·여가의 사회·심리·역사학에 스트레스가 뇌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파리의 시간 심포지엄과 세계에서 여유 시간이 가장 많다는 덴마크 취재까지. 절실한 만큼 가능한 모든 분야, 여러 전문가를 찾아 분석하고 ‘평온한 삶’을 위한 길을 모색한다.

여러 전문가가 말하는 현대인의 시간 부족,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에 대한 규정 몇 가지만 들어도 상황은 빤하게 드러난다. 개미떼의 질주, 역할 과부하, 쫓기는 삶, 시간 압박, 오염된 시간, 크로노필리아(chronophilia)…. 오염된 시간은 해야 할 일들로 머릿속이 가득 찬 상태, 크로노필리아는 바쁜 생활을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현대인의 정신질환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개인이 시간에 대한 지배력을 잃기 시작한 것은 13세기 시계가 발명되고 제조업이 발달하면서부터다.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시간은 돈으로 계산됐고, 고용주들은 시간과 돈을 모두 지배하게 된다. 이들은 노동자에게 시간을 최대한 일에 투입할 것을 요구했고, 사람들은 ‘이상적 노동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 모든 가용 시간을 업무에 쏟았다. 바쁜 것이 성공과 등식화되면서 스케줄은 더욱 빡빡해졌고, 특히 여성들의 상황은 ‘좋은 엄마 신화’ 때문에 더 어려워졌다. 과잉 모성에 대한 명령은 엄마들로 하여금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낳게 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무한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실제로 미국에서 엄마들이 자녀양육에 쓰는 시간이 1960년대보다 많다. 1965년 엄마들이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이 주당 10시간 정도였다면, 요즘 엄마들은 주당 14시간에 이른다.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함께 놀아주며 상호작용을 하는 시간은 3배 가까이 늘었다. 엄마보다 덜하지만 아빠들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명령과 성취주의적 개인 이데올로기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개인들의 시간을 산산조각내고, 증발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을까. 결론을 요약하면 ‘일, 사랑, 놀이’의 균형이다. 직장, 가정, 자신을 위한 여가의 단단한 삼각형. 이를 위해 사회적으로는 보육제도 등 시스템을 구축하고, 개인은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며, 일과 휴식 사이의 리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삶이 얼마나 짧은지를 생각하면, 우선순위 매기기가 아주 쉬워진다고 한다. 결과에 과정을 희생하지 말고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고도 했다.

정리해 놓고 보니 별다른 방안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저자가 여러 전문가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 분석을 자기 삶에 대입해 생각하며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은 간단치 않다. 쉽게 들을 수 없는 단단한 이야기다. 절실하게 답을 찾아 나선 저자와 함께 삶을 점검해 본다면, 책을 덮은 뒤엔 책을 읽기 전과 조금은 다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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