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후 신축된 화신백화점의 1937년 모습.
화재 후 신축된 화신백화점의 1937년 모습.
우리 역사는 깊다 1, 2 / 전우용 지음 / 푸른역사

“스페인의 역사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인간에게 본성이란 없다. 그에게는 오직 역사가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나는 이 통찰에 동의한다. 인간이 자신의 본성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지상에 인류가 출현한 당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물질세계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 변화해온 것이다.”

역사학자 전우용은 머리말에서 기획 의도를 분명히 밝힌다. 이를 위해 60개의 주제를 선정하고, 날짜별로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역사’들을 되살려 우리의 현재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첫 장 ‘1월 7일 조선총독부 이전’ 편을 보자. “일제는 경복궁 전각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빠짐없이 잔디를 심었다. 한국인에게 잔디는 죽은 사람의 집인 무덤에만 심는 풀이었다. 산 사람이 사는 집에 잔디를 심는 것은 금기였다. (중략) 궁궐 안의 잔디밭은 곧바로 ‘왕조의 죽음’과 연결되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많은 한국인이 잔디밭을 궁궐의 필수적인 시설로 잘못 인지하고 있다. 잔디와 궁궐 사이에 대한 인상만 강해져 해방 후에는 아예 부잣집의 상징처럼 되었다.”

‘9월 15일 추석 임시열차 증편 운행’에는 명절 귀성인파에 대한 유래가 설명돼 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서울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들 중에는 전쟁통에 죽은 부모형제를 고향에 묻은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많았다. 1956년 9월 19일의 추석을 나흘 앞두고 9월 15일 추석 임시열차가 증편 운행되었다. 이후 추석열차 예매소 앞에 장사진이 펼쳐지고 서울을 빠져나가는 도로 교통이 마비되는 일이 해마다 되풀이되었다. 그런데 이 한국적 전통문화도 그리 오래 지속될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은 서울 시민의 반 이상이 서울내기이며, 대가족이 사라지고, 장묘문화가 바뀌고 있다.”

통쾌한 일화도 담겨 있다. ‘1월 27일 화신백화점 화재’ 편을 보자. “1935년 1월 27일 화신백화점 서관에서 불이 나 삽시간에 두 건물 모두를 태웠다. 화신백화점은 잿더미가 됐고, 조선인의 자존심도 잿더미가 됐다. 다음 날 열린 화신의 중역회의는 즉각 본래 그 자리에 ‘초현대적’인 백화점을 짓기로 결정했다. 1937년 11월 지하 1층, 지상 6층의 새 백화점 건물이 준공됐다. 서울에 다녀간 시골 사람이 가장 먼저 받는 질문이 ‘화신에 가보았느냐’인 시대가 열렸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스스로 ‘나답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 성찰하는 시간을 잠시나마 갖게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한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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