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증권사 최대수혜… 명의도용 악용 가능성도금융실명제 도입과 함께 금융계좌 개설 시 대면 실명확인 원칙을 고수해 온 금융당국이 22년 만에 비대면 실명확인 방식도 연내 허용키로 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이나 증권사 등을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인터넷 등을 통해 계좌를 개설하는 길이 열릴 전망이다. 이를 둘러싸고 온라인을 통한 금융상품 가입이 편리해져 인터넷 전문은행 출현과 같은 금융 혁신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동시에 명의도용·대포통장 등과 같은 금융사기의 위험성도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비대면 실명 확인제의 실제 내용과 장·단점, 향후 과제 등을 알아본다.

1. 개념 및 시행 시기는

지금까지는 금융회사가 고객이 계좌 개설을 신청하면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등과 같은 ‘실명확인증표’를 대면으로 확인해야 했다. 이를 위해 고객은 금융회사 점포를 방문해 본인이 직접 자신의 신분증을 제시해야 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오는 12월부터 해당 규정에 대한 유권 해석을 수정해 비대면 확인도 가능토록 했다. 대신 명의도용 가능성 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대면 실명확인 조건을 엄격하게 규정하기로 했다. 은행권은 오는 12월부터 비대면 실명확인 방식을 시행한다.

이를 위해 전국은행연합회와 시중은행, 금융위, 금융감독원, 금융보안연구원, 금융결제원으로 구성된 사전테스트 전담반(TF)을 구성하고, 6월에서 11월까지 은행권 사전테스트를 실시한 후 비대면 실명확인 방식별 구체적인 적용방안 등의 안내자료를 마련할 예정이다. 매주 1회 TF를 운영해 상호 정보를 공유하고, 은행권 질의에 대해서도 신속히 답변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비은행권은 같은 절차를 거쳐 내년 3월부터 도입한다.

2. 22년 만에 허용 이유는

금융당국은 금융실명제를 도입하면서 금융회사가 대면으로 고객의 실명을 확인해야 한다고 1993년 유권 해석을 내렸고, 지금까지 엄격하게 원칙을 지켜왔다. 22년 만에 비대면 허용으로 유권해석을 바꾼 것은 그 사이에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으로 인해 금융 인프라도 이제는 비대면 방식으로 실명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첨단화·고도화했기 때문이다.

특히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 전문은행 등을 도입하고 금융 혁신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는 실명확인 방식에 대한 규제를 근본적으로 손질해야 했다.

이미 비대면 실명 확인을 도입할 수 있을 만큼 금융 환경은 무르익은 것으로 금융당국은 보고 있다. 금융 실명 거래 관행은 상당히 정착됐고, 소비자의 비대면 채널(인터넷·스마트폰 뱅킹 등)을 통한 금융 거래 비중은 90%에 육박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모바일 서비스의 보편화에 따라 전자인증이나 생체인식 등과 같은 본인 확인 기술은 비금융 분야를 중심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고려해 비대면 방식을 허용키로 했다.

3 어떻게 확인하나

금융당국은 명의도용, 금융사기 등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해외에서 검증된 비대면 확인 방식을 4가지로 압축하고 이 중 적어도 2가지 방식 이상을 활용해 2중, 3중으로 본인을 확인하도록 했다. 4가지 방식은 크게 ①신분증 사본 제시 ②영상통화 ③현금카드 등 전달 시 확인 ④기존 계좌 활용 방식 등이다.

일례로 금융회사는 계좌를 개설하기 전에 신분증 사본을 제시받고, 영상통화로 얼굴을 확인하는 등의 복수의 방식으로 본인 확인을 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또한 빠른 기술 발전 속도를 고려해 금융회사가 이 중 2가지 방식을 이행하도록 하는 것 외에도 추가로 자율적인 방식으로 본인 확인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가령, 1번과 2번을 통해 본인 확인을 한 뒤에 휴대전화 본인 인증 방식으로 최종 확인을 하는 식이다.

4 추가 확인 방식은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하는 4가지 방식 외에도 추가로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이 다음과 같이 존재한다. 우선 인증서, 아이핀, 휴대전화 본인 인증 등처럼 타 기관에서 신분을 확인한 후 발급한 인증서 등을 통해 추가로 본인을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또 고객이 제공하는 다수의 개인정보와 신용정보사 등이 보유한 정보를 대조해 확인하는 방법 등이 있을 수 있다.

다만 타 기관이 확인한 결과를 활용하는 방식의 경우 인증수단이 분실·해킹 등으로 타인에게 유출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이핀 부정발급이나 대포폰 개통 등과 같은 사례도 발생하고 있어 제한적으로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다수의 개인정보를 검증하는 방식의 경우도 개인정보가 유출된 경우 타인이 계좌 개설에 악용할 위험이 있고 신용정보사 등을 통해 대조 가능한 정보가 제한적이라는 점 등도 고려해 추가 확인 방식으로만 활용토록 했다.

5 해외 사례는

영국·캐나다·일본 등은 금융회사가 사용할 수 있는 비대면확인 방식을 다음과 같이 의무화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고객이 신분증을 촬영 또는 스캔한 후 금융회사에 온라인(모바일 포함)으로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금융회사는 전달받은 신분증을 해당 발급기관에서 조회한 후 계좌를 개설해 준다. 문제는 신분증의 디지털 사본과 신청인이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게 어렵다. 일본은 또한 현금카드나 보안카드 등을 고객에게 우편 등으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배달 직원이 신분증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배송 등에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배달 직원의 신뢰성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가 의문으로 제기된다.

프랑스는 직원이 고객과 영상통화를 한 후 육안 및 안면인식기술을 통해 신분증 사진과 고객 얼굴을 대조토록 하고 있다. 금융회사 영업시간에, 영상장비를 보유한 고객만 활용할 수 있고, 담당 직원이 있어야 해 비용이 드는 단점이 있지만 가장 신뢰성이 높은 방법으로 꼽힌다.

캐나다는 금융회사에 이미 개설된 계좌로부터 소액이체 등을 통해 본인 확인을 하도록 하고 있다. 휴면계좌 등을 활용한 명의도용 등 금융 사기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6 비대면 실명확인 활용 업종은

비대면 실명확인 방안이 적용되는 금융 업종은 현재 금융실명법상 실명확인의무가 있는 금융회사들은 모두 해당한다. 가령 실명확인 의무는 금융자산 관리를 위한 계좌개설 시 적용되며 은행, 증권사, 자산운용사, 저축은행, 농·수협, 신협, 마을금고 중앙회 및 단위조합, 우체국 등이 그 대상이다. 특히 농협, 증권사 등 여타 금융기관은 내년 3월부터 비실명 본인 인증이 가능하다.

지금도 비대면 가입이 가능한 보험사와 카드사는 이번 조치와 상관이 없다. 비대면 실명확인 방안은 금융당국이 규제 완화 차원에서 다양한 비대면확인 방식을 활용토록 함으로써 소비자 편익을 높이고자 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정상 창구에 오기 어렵거나 이를 피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비대면 방식이라는 선택을 추가로 제공한 것이기 때문에 비대면 실명확인 방식을 의무적으로 사용할 필요는 없다.

7 더 불편하다(?)는 우려

금융당국은 비대면 실명 확인제를 도입해도 대부분 고객은 여전히 대면 방식을 주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점이 가까이 있거나 대면 방식이 익숙한 고객의 경우에는 창구에 가서 신속하게 대면확인을 한 후 계좌를 개설하는 것이 편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금융당국이 비대면 본인 확인의 위험성을 우려해 관련 절차를 매우 까다롭게 규정하고 있어 고객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큰 불편을 느낄 수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거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온라인을 통해 원스톱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나 금융실명제 원칙을 훼손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엄격하게 본인 확인 절차 규정을 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점포방문이 어려운 맞벌이 부부나 인터넷 활용이 익숙한 청년층 등의 경우에는 비대면확인 방식이 더 편리할 수도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 고령화 및 점포 감소 추세를 고려하면 비대면 확인방식은 앞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적잖다.

8 금융사기 악용 가능성은

대면만큼 본인 확인 절차 과정이 확실한 것은 아니므로 명의도용이나 대포 통장 개설 등에 악용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이에 대비해 철저히 모니터링하고 대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금융위원회는 해외사례 분석을 통해 검증된 방식만 우선 허용하고 복수의 인증 방식을 사용토록 함으로써 거래 안정성 확보에 주안점을 두었다. 금융현장에서 비대면 실명 확인 방안이 본격 시행되기 이전에 자체·외부검증 테스트 과정을 충분히 거쳐 금융사기 가능성이 최소화되도록 관계기관 합동으로 사전준비에 전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다만 금융당국은 비대면 방식을 허용한다고 해서 대포통장 발급이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대포통장은 계좌개설의 문제보다는 유통단계의 문제”라면서 “대부분 명의인이 직접 계좌개설 후 대가를 받고 제삼자에게 양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9 금융업계 미치는 영향은

점포 기반이 취약한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등의 금융상품 가입이 한층 쉬워짐에 따라 소비자의 자본시장 참여 활성화가 기대된다. 실제 이번 조치로 최대 수혜를 입는 곳은 지점이 적거나 없는 중소형사 증권사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점이 많은 대형사의 경우 굳이 비대면계좌가 아니라도 지점에서 계좌개설을 통해 대면 자산관리영업도 할 수 있으며, 은행연계증권계좌 수수료도 전체적으로 큰 비용이 아니어서 굳이 여기에 목멜 이유는 없다. 하지만 아예 지점이 없거나 부족한 증권사는 비대면계좌가 메인증권계좌가 되면 은행 연계 증권계좌의 개설에 따른 수수료를 대폭 절감할 수 있게 된다. 부족한 지점을 커버하는 은행의 역할을 비대면계좌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번 조치가 핀테크의 정점인 인터넷은행설립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10 규제 개혁 역행 지적 있는데

금융권 일각에서는 비대면 실명 확인제에 대해 오히려 규제개혁 척결 대상으로 꼽히는 ‘규정 열거주의(포지티브)식 규제’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금융당국이 비대면 실명 확인제를 도입하면서 영상통화와 신분증 사본 확인, 현금카드 배달 시 본인 확인, 기존 계좌 활용(타 금융회사에 이미 개설된 계좌로부터 소액 이체를 받음) 등 4가지 방법 가운데 적어도 2가지 이상의 방식으로 실명 확인을 해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 구태의연한 포지티브식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이들은 인터넷은행을 활성화하고 금융시장에 역동성을 불어넣기 위해선 무엇보다 금융사의 자율적 재량을 높여 줄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당국은 일단 비대면 실명확인 방안이 지난 20여 년간 지속해온 금융 관행을 변경하는 일이므로 실무 혼선 및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포지티브식 규제 방식을 채택한 것은 불가피한 조치라고 해명하고 있다.

이관범·박정경 기자 frog7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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