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기(79), 방열(74), 신선우(59)는 한국 농구사에 걸출한 족적을 남겼다. 김영기는 1956년 멜버른, 1964년 도쿄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1969년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의 대표팀 감독을 맡아 두 대회에서 한국 남자농구 사상 첫 우승을 이끌었다. 1997년 한국농구연맹(KBL) 출범의 주역이다.
방열은 1962년 자카르타아시안게임, 1964년 도쿄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에 대표팀 감독으로 참가해 역시 금메달을 획득했다. 1978년 현대, 1986년 기아 실업팀 창단 감독으로 농구대잔치의 흥행을 주도했다.
신선우는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4년 실업팀 현대의 감독을 맡았고 프로 출범 이후 현대, KCC, LG, SK의 사령탑을 지내면서 챔피언결정전 3회 우승(역대 2위)을 이끌었다.
셋 모두 당대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였으며, 또 최고의 조련사였다. 체육관 밖에서도 성공적인 인생을 가꿨다. 김영기는 기업은행 지점장, 신용보증기금 전무, 신보투자 사장 등을 역임했다. 방열은 1992년 가천대(당시 경원대) 교수로 임용됐고 2010년엔 종합대학 총장(건동대)으로 취임했다. 신선우는 현대증권에서 영업부장까지 승진했다. 그리고 방열은 2013년 대한농구협회 회장으로, 김영기는 지난해 KBL 총재로, 신선우는 지난달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총재로 선출됐다. 한국 농구의 프로(KBL, WKBL)와 아마(대한농구협회) 수장 자리가 모두 경기인 출신으로 채워졌다.
한국 스포츠는 경제·정치 의존도가 높아서 기업인, 정치인들이 경기단체장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국내 스포츠의 자생력이 부족한 탓이다. 경제인, 정치인의 후원을 받지 못하면 경기단체 운영이 어려웠기에 외부 인사를 수장으로 ‘초빙’해 도움을 받으면서 연명해왔다.
편견 탓에 특히 경기인 출신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수익성을 갖춘 프로단체도 마찬가지. 야구, 축구, 배구의 프로·아마 단체장 7명 중 경기인 출신은 2명뿐이다. 그래서 농구의 경기인 출신 단체장 ‘대거’ 선출은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 농구는 벼랑 끝으로 몰렸다. 지난해 정재근 전 연세대 감독이 고려대와의 경기 도중 심판을 구타했고, 농구협회 임원과 심판들이 판정과 관련된 청탁과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프로농구단 KGC인삼공사의 전창진 감독이 스포츠 도박과 관련된 승부조작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팬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란 말이 있다. 일련의 불상사를 한국 농구에 스며 있는 비정상과 부조리를 일소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오히려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다행히 경기인 출신 3인의 단체장은 농구계의 생리나 관행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적폐와 비리를 척결할 적임자로 꼽힌다. 과거 코트를 호령했던 솜씨를 되살릴 때다. 공은 이미 손에 쥐어졌다. jh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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