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1일 2020년 이후의 신기후체제에 맞춰 온실가스 감축 목표(目標) 시안을 제시했다. 2030년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BAU)보다 최저 14.7% 줄이는 1안부터 31.3% 감축하는 4안까지 4가지 시나리오 중 택일해 이달 말까지 유엔에 제출하게 된다. 2009년 이명박정부는 2020년 전망치 기준 30%를 줄인다는 과감한 정책을 내놓았다. 녹색성장 드라이브의 일환이었지만, 제조업이 여전히 성장동력인 나라에서 과도한 목표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당장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된 올해 현실적 위협을 느낀 기업들이 정부를 상대로 잇단 소송을 제기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온실가스를 줄이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는 물론 협력해야 한다. 다만, 국내 산업이 감당할 수준이어야 설득력이 있다. 이미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에너지 효율화를 이룬 한국 기업은 온실가스 감축 여지가 제한적이다. 정부의 2030년 배출 전망치도 현실에 비해 너무 낮게 설정됐다는 지적도 있다. 산업계가 가장 강도가 낮은 1안조차 초과 배출량에 따른 탄소세 등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호소하는 이유다. 사실 경제 살리는 게 급한 다른 나라의 고민도 비슷하다. 온실가스 배출 상위국인 중국·인도는 “막연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성장을 희생할 수 없다”는 개발도상국 입장을 주도해왔다. 제조업 강국인 미국·일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춤하거나 뒷걸음질해왔다.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적인 유럽국 가운데 제조업이 주력인 나라는 극히 드물다. 온실가스 감축을 둘러싼 각국 대응은 결국 ‘실리전’이다.

그러잖아도 한국경제를 지탱해온 제조업 성장세가 꺾이고 있는 시점이다. 강도 높은 환경 규제를 더하는 건 저성장을 고착시킬 패착이 될 수 있다. 현실과 명분, 현재와 미래를 냉철히 따져 기업이 감내할 수준에서 현명하게 결정해야 한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