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KT위즈 파크 중계석에서 최원호(오른쪽) SBS스포츠 해설위원이 정우영(왼쪽) 아나운서 등과 함께 중계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안치용(36) KBSN 해설위원은 올 시즌부터 ‘마이크’를 잡았다. 안 위원은 선수 시절 입버릇처럼 “은퇴 후에는 야구 해설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한 법. 안 위원은 “해설위원이 되고자 준비했는데 막상 마이크를 잡아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고 털어놓았다. 프로야구 해설위원은 겉보기와는 사뭇 다르다. 치열한 자기계발이 필수인 ‘고난의 직업’이다. 야구 해설위원들은 경기가 시작되기 3∼4시간 전 경기장으로 출근한다. 선수나 코칭스태프라면 구단 버스를 이용하지만, 해설위원들은 직접 운전을 해 경기장까지 온다.
최원호(45)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지방 경기 중계방송을 위해 출장을 갈 때는 고속버스나 KTX 등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야구장에 도착하면 훈련을 하는 양 팀 선수들, 코칭스태프와 만나 당일 컨디션이나 전략 등을 캐물으며 정확한 해설을 위한 사전 정보를 수집한다.
그러나 절친한 사이라고 무턱대고 선수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금물. 14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한화-LG의 경기 해설에 앞서 경기장에 나온 최 위원은 “민감한 선수들은 해설위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컨디션이 변화할 수 있다”며 “그래서 가급적이면 감독 등 코칭스태프와 이야기(취재)를 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안치용(오른쪽) KBSN 해설위원이 지난 11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타격 훈련을 하는 SK 이명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11일 SK-NC의 경기 해설을 위해 문학경기장을 찾은 안 위원도 ‘선수들만의 공간’인 라커룸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불문율만큼은 지키려고 애쓴다. 지난 시즌까지 SK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안 위원은 그라운드나 더그아웃에서는 SK 선수들과 자유롭게 어울린다.
정보 수집을 마치면 해설위원들은 캐스터, 담당 프로듀서와 함께 중계 회의를 하고 경기 도중 나올 수 있는 주요 기록 등을 사전에 점검한다. 중계방송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캐스터와 해설자의 인사말은 경기 시작 1시간 전쯤 촬영한다. 오후 6시 30분쯤 중계가 시작되면 해설위원은 3∼4시간 동안 1평(3.3㎡) 남짓한 중계석을 떠나지 못한다. 최 위원은 “경기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가급적 짧게 말을 하지만, 그래도 경기의 맥을 끊는 경우가 있다”며 “쉬운 단어를 활용하면서 해설을 하려고 하지만 갑자기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당황한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안 위원은 “무의식중에 시청자들께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거나 부적절한 발언을 할까 봐 늘 신경을 쓴다”며 “해설을 못 한다는 네티즌의 반응이 가장 무섭다”고 말했다.
중계 현장의 환경은 무척 열악하다. 오래된 구장 중엔 중계석에 냉방 시설이 구비되지 않은 곳도 있다. 여름철이 되면 해설위원은 비좁은 중계석에서 땀을 흘려가며 3∼4시간을 버텨야 한다. 저녁 경기 때는 중계석으로 날아드는 모기 등 날벌레들과 ‘사투’를 벌인다.
경기 도중 화장실에 가야 하는 경우도 생기지만 함부로 자리를 비울 수 없어 대개는 그냥 참는다. 안 위원은 “몇몇 구장은 화장실과 중계석 간의 거리가 멀어 공수 교대 때 잠깐 다녀오기조차 어렵다”고 설명했다.
지방 경기 해설을 위해 출장을 떠나면 모텔에서 머문다. 안 위원은 “선수 때에는 고급 호텔에서 비싼 밥을 먹었는데 해설자가 된 뒤에는 모텔에서 자고 싼 식당을 찾아다닌다”며 “해설위원도 현역 선수 못지않게 체력 소모가 심한데 숙식은 예전만 못하다”며 웃었다.
경기가 끝나도 해설위원의 업무는 계속된다. 밤 10시쯤 경기가 끝난 뒤 간단한 현장 뒷정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다음날 오전 1시가 넘는다. 이때부터 해설위원들은 자신이 중계하지 않았던 다른 경기들을 챙긴다. 집에 도착한 안 위원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스포츠 채널의 프로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챙겨 보는 일. 안 위원은 “방송 3사의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은 빠지지 않고 챙겨본다”며 “내가 중계했던 경기도 쉬는 날을 골라 챙겨보면서 모니터링을 한다”고 말했다.
경기가 없는 날은 방송국으로 나가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등을 촬영한다. 짧은 시간 방송되는 프로그램이지만 촬영 시간은 실제 경기 시간보다 긴 4∼5시간을 웃돈다.
최 위원은 “방송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결국 선수들과 똑같이 일주일에 5∼6회는 매일같이 출근하는 셈”이라며 “자는 시간이 늦어진 것을 포함하면 업무 강도는 선수 시절보다 강한 편”이라고 말했다.
물론 해설위원들의 자부심은 크다. 안 위원은 “선수 때는 내 입장에서만 보고 경기를 생각했는데 해설위원은 모든 사람을 다 고려해야 하는 게 재미있다”며 “야구 경기 중계방송을 하다 보면 감독도, 코치도, 선수도 될 수 있는데 이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최 위원은 “현역 시절보다 야구를 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게 느껴진다”며 “투수 출신이어서 그동안 투수 입장에서 야구를 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제는 경기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고 자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