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 / 전국부장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생소한 이름의 바이러스 감염병이 ‘공포의 팬데믹(대유행)’을 불러왔다. 질병 자체로 인한 인명 피해, 경제적 손실은 만만찮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계절감기 때문에 목숨을 잃는 환자가 한 해 1600명, 결핵은 2000명에 달한다는 단순 통계로만 비교해 아직 사망자 19명의 신종 질병에 과도한 공포 반응이란 지적도 있다. 세계적으로 발견된 지 겨우 3년, 이름도 중동감기 아닌 메르스. 마치 화성인의 침공처럼 미지의 영역으로 느껴져 더 불안해 하는 측면이 있으리라.

문제는 메르스를 계기로 한국 사회 내부에 똬리 틀고 있던 이기심과 무지(無知), 폭력성의 바이러스가 새롭게 발견됐다는 것이다. 개인이 느끼는 죽음의 공포가 역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 즉 에로스에 바탕을 둔다면 이런 류의 사회적 공포는 타나토스에 가깝다. 스스로 학대하고 서로 공격하는 파괴적 본능 말이다. 사람들은 세월호 때도 그랬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공동체가 믿을 수 있는 곳인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지금보다 나아질까’ 하는 근본적 회의에 빠졌다. ‘힘들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 했던가. 체면의 허울 아래 공손한 외교적 수사를 구사하던 ‘문명인’들은 급하자 “너 죽고 나만 살자”며 야수로 돌변했다.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타임머신을 타고 이 땅에 돌아온 모양이다.

메르스 발생 아흐레 만에 보건복지부는 충북 충주시의 공공연수원을 격리대상자 집단수용 시설로 쓰자고 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강원도는 메르스 환자용 국가지정 격리병상을 준비해달라는 복지부 부탁을 단칼에 거절했다. 지자체 이기주의다. 지방자치가 국가라는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나 혼자 잘 먹고 잘살자’는 아닐 텐데, 표심을 두려워한 단체장들의 작은 포퓰리즘은 설득과 통합의 큰 리더십을 추월해 버렸다.

병원 이기주의도 판쳤다. 고열환자로 메르스가 의심되면 아예 응급실 앞에서 문전박대를 했다.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뺑뺑이 돌리는 ‘메르스 핑퐁’ 때문에 1, 2개 초기 감염병원의 2차 감염자들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럼 개인은 잘했나. 자가격리 판정을 받고도 답답하다며 골프를 치러 나가거나 해외로 출국하겠다고 고집을 피운 환자, 의료진 자녀들이 마치 병을 옮기는 바이러스라도 되는 양 따돌린 학부모, ‘카더라’의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마구 퍼뜨리고 심지어 기회라는 듯 ‘메르스 피싱’까지 창안해낸 예비범죄인, 바로 우리 이웃의 민낯들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생물의 보존본능은 타고난 거라고 설파했다. 인체 면역체계도 마찬가지다. 면역은 나를 지키려는 외부 배타적인 자연 생리작용이다. 그러나 사이토카인 폭풍에서 보듯 지나치면 나를 죽이기도 한다. 내부의 자기 치유력과 약, 수술 같은 외부의 지원이 조화를 이루어야 건강한 신체가 유지된다. 나를 넘어 타자와 공존하는 지혜를 배워야 할 시기다. 무지를 인식하는 게 참된 깨달음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철학자는 말했다. 메르스 사태가 종식될 때쯤, 한국인 스스로 내게 부족한 ‘그 뭔가’를 확실히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nosr@munhwa.com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