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학용 / 논설위원

늘 똑같다. 예기치 않은 참사가 터지면 정부는 허둥대다 화를 키운다. 정치권은 표심 언저리를 배회하다 ‘초당적 협력’ 시늉만 낸다. 국민은 늑장대응에 분노하고 경제 후폭풍에 질리다 지도자의 리더십 부재를 한탄한다. 귀책 당사자는 남 탓만 하다 여론에 집중 난타를 당한다. ‘불온한’ 네티즌은 정보의 바다를 유영하다 악성 괴담을 퍼 나른다. 언론은 널뛰다 ‘이젠 차분해지자’며 훈계조로 돌변한다. 그러고는 일정 시간이 흐르면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모두가 집단 기억 상실증에 걸린다. 한국 특유의 도돌이표 ‘재앙 공식’이다. 발생한 지 한 달이 다 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도 이변이 없는 한 이런 전철을 밟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라져야 한다. 글로벌 이슈가 돼 버린 이번 사태에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료 당국의 무능·무식·무대책·무책임과 국민의 ‘불신증후군’이 뒤엉킨 한국판 메르스 질병사가 새로 쓰일 경우 한국은 ‘방역 미개국’ 오명을 자자손손 덮어쓰게 된다. 또 다른 이유는 경제다. 이 질병이 겨우 숨을 쉬기 시작한 한국 경제의 숨통을 막을 중대 시점에 불쑥 나타난 불청객이기 때문이다. 경제도 늑장 대응하면 ‘메르스(M) 공포’보다 더 무서운 ‘D(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의 공포’를 불러올 수 있다. ‘M공포’는 개인을 사망에 이르게 하지만 ‘D공포’는 국가 전체를 멸망으로 몰고 간다. 경제 빙하기에 갇혔던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그 방증이다.

메르스 사태 이후 쏟아지는 각종 통계는 이런 불길한 예감에 힘을 보탠다. 가장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충격을 받는 지표는 소비다. 민간 소비는 국내총생산(GDP)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우리 경제의 중추다. 메르스발(發) 소비 타격은 세월호 때보다 더 큰 중형 태풍급이다. 세월호발 경제 충격은 자의식적 소비 억제 때문이었지만 메르스는 격리, 출입제한, 휴업 등으로 인한 강제적 경제활동 억제 요인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놀이공원과 야구장 입장객이 전년 동기 대비 절반 이상 급감했다. 백화점 매출액도 20% 가까이 줄었다. 오죽하면 ‘소비절벽’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을까. 관광산업도 쑥대밭 직전이다. 6월 들어 한국 여행을 취소한 외국인 관광객이 10여만 명이나 된다.

국내외 경제예측기관들의 분석도 암울하다. 모건 스탠리는 메르스가 한 달 내 진정되더라도 올해 한국 성장률은 0.15%포인트 하락하고, 3개월간 지속되면 0.8%포인트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이번 사태가 8월 말까지 가면 GDP 손실액은 20조922억 원에 달한다고 했다. 어지간한 위기론에는 꿈쩍 않는 한국은행도 메르스 악재 앞에 ‘백기’를 들며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1.50%로 인하했다. 메르스 이전의 다른 지표들도 이미 위험 수위다. 5월 소비자물가는 6개월 연속 0%대다. 1분기 성장률(전분기 대비)도 수출 부진으로 0.8%에 그쳤다. 일본(1.0%)에도 뒤처진 수치스러운 수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전망한 사실상 올해 성장률 2%대 ‘쇼크’가 현실로 바짝 다가온 느낌이다.

경제는 비상(非常) 상황인데도 정치권과 정부 대응은 평상(平常) 수준이다. 야당은 6월 임시 국회에서도 서비스발전기본법 등 핵심법안을 내칠 분위기다. 당장 생색나는 ‘메르스 졸속 입법’에만 혈안이 돼 있을 뿐이다. 미적대기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금리 인하에 이어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6월 말까지 최종 판단을 미룬 채 군불만 땐다. 정부가 추경에 앞장설 경우 제기될 정책 실패 책임 논란을 피하기 위해 추경 여론이 더 확산되기를 기다리는 얄팍한 ‘수’도 감지된다. 각 부문의 구조개혁은 제자리걸음이다.

M공포와 D공포는 공통점이 많다. 우선, 일단 감염됐다 하면 사람(시장) 간 전염 속도가 빠르다. 그래서 예방이 최선의 방책이다. 또 재빠르고(swift), 충분한(sufficient) 초동 진압으로 전염 경로를 최단 기간 내 차단해야 한다. 둘째, 몸(시스템)이 허약한 사람(국가)일수록 잘 전염된다. 기초체력(펀더멘털)을 잘 다져야 하는 이유다. 끝으로,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만큼 공포감도 배가된다. 가능한 한 빨리 과잉불안을 떨쳐 내야 살아남는다. ‘메르스 경제대전’(大戰)에 나선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국민이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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