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석원 ‘고궁보월展’ 인기
메르스 등 혼돈의 시대 속
능동적으로 생동하는 달밤
새 시대의 희망 묘사 공감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사석원 작가의 ‘고궁보월’(古宮步月·옛 궁에서 달의 그림자를 밟는다는 뜻)전이 흥행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2일 개막에 앞서 열린 전시 프리뷰에서 40여 점의 작품 가운데 10점이 팔려나갔고, 전시가 중반을 넘어선 22일 현재 반 정도의 작품이 새 주인을 만났다. ‘메르스 여파’로 갤러리를 찾는 이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석원 작가의 작품이 거둔 이 같은 성적표는 어떤 연유에 기인할까.
7월 12일까지 계속될 이번 전시의 소재는 서울의 고궁이다. 빌딩 숲을 조금만 벗어나면 고즈넉한 고궁에 쉽게 닿을 수 있는 서울, 이는 600년 이상의 시간을 품어온 수도 서울의 특별함이다. 사석원은 서울 토박이다. 그래서 창경원과 경복궁을 구경하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작가의 일상의 한 부분이었고, 특히 여러 시·공간이 교차하는 옛 궁궐은 분주한 일상을 벗어나 호젓함을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사실 사석원은 지난 2013년 모두 18회에 걸쳐 문화일보에 ‘사석원 작가의 서울연가’(7월 6일∼11월 2일)시리즈를 연재하며 특유의 해학적인 그림과 맛깔스러운 글로 서울의 맛과 멋, 풍류와 인생을 되살려내 호평을 받았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수백 년 전 그곳을 걸었을 왕들의 자취를 따라 밟으며, 자신의 마음속에 담긴 고궁의 아취(雅趣)를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특히 옛 궁궐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부엉이, 사슴, 토끼, 호랑이, 사자 등의 동물은 왕실의 인물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에 얽힌 이야기를 대변하는 것으로 화면에 보다 환상적인 분위기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유머와 해학이 넘치는 모습과는 달리, 사실적으로 묘사된 동물들의 표정에서 마치 감추어진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은 신비로움과 상서로움, 혹은 역사 속의 한순간을 목도하는 듯한 장중함마저 느끼도록 한다.
이번 전시에서 또 눈여겨볼 것은 출품작들의 시간적 배경이 주로 달밤(月夜)이라는 점이다. 달밤은 어둠과 휴식, 수면의 시간으로 어둡고 수동적인 밤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사석원의 달밤은 능동적으로 생동하는 밤이다. 가나아트홀 관계자는 “많은 관람객이 사석원 작가의 이번 작품에 특히 더 끌리는 이유가 어두운 혼돈의 시대에 밤을 상징하는 달을 그렸지만 그 달이 떠 있는 시간이 동트기 전 새벽녘이어서 오히려 새 시대의 희망을 엿볼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정조와 고종을 주목한 것도 그래서 주목을 받고 있다. 고종은 정조의 포부를 본떠 근대화의 씨를 뿌리려 한 임금이다. 손철주 평론가는 “이번 전시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들 중 하나인 ‘1776년 3월 창덕궁 후원’의 정확한 시대 배경은 3월 10일로 조선의 22대 임금 정조가 옥좌에 오른 날을 그린 것이고, ‘경복궁 향원정의 십장생’은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섭정의 굴레를 벗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며 남쪽에 못을 파고 지은 정자 향원정을 화폭에 담은 것”이라며 “새 시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갖게 하는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사 작가는 이번 전시회에 대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고궁을 배경으로 동물형상과 두툼한 물감, 거친 붓질을 통해 군주의 고뇌를 표현하고 싶었다”며 “이번 기회에 많은 분이 조선 500년 역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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