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다리에 얽힌 전설들
농다리가 물을 건너는 거대한 지네처럼 보이는 이유는 양쪽으로 튀어나온 교각 때문이다. 자연석을 축대 쌓듯 안으로 물려가며 쌓아올린 교각이 그 위에 올린 상판보다 넓어 지네발처럼 보이는 것이다. 길이 93.6m, 폭 3.6m, 교각 1.2m, 교각과 교각 사이 폭이 0.8m다. 상판은 두께 20㎝ 정도의 장대석을 얹어 만들었다. 이 다리는 심오한 동양철학을 근거로 만들었다고 한다. 교각에서부터 상판까지 붉은색을 띤 자석(紫石)을 사용했는데, 이는 음양의 기운을 고루 갖춘 돌이라는 고서의 기록에 따른 것이다. 본래는 별자리 28수에 따라 28칸의 수문을 만들었으나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4칸이 소실되고 24칸만 남아 있던 것을 지난 2008년 4칸을 복원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농다리가 있는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굴티(중리)마을은 상산 임 씨 집성촌이다. 고려 때 최 씨 무신정권의 뒤를 이어 권세를 잡았던 임연(林衍·?~1270)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농다리에 얽힌 전설도 임연과 관계된 것이 많다.
우선 다리를 놓은 사람과 관련해 임연이 놓았다는 전설과 그의 누이가 놓았다는 전설이 각각 구전돼 내려온다. 임연은 매일 아침 세금천에서 세수를 했는데, 추운 겨울날 건너편에서 한 젊은 부인이 내를 건너려는 것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자초지종을 물었다.
여인은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급하게 가는 길이라고 대답했다. 정황을 딱하게 여긴 임연은 용마를 타고 돌을 실어 날라 하루아침에 다리를 놓았다. 용마는 너무 힘겨워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는데, 그때 떨어진 돌이 용바위라고 한다.
두 번째 전설은 비극적이다. 굴티마을 임 씨에게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둘 다 힘이 장사라 서로 죽고 사는 내기를 했다.
아들(임연)은 굽 높은 나무신을 신고 목매기송아지를 끌고 서울에 갔다 오기로 하고, 딸은 다리를 놓기로 했다. 어머니가 보니 아들은 올 기미가 없는데 딸은 치마로 돌을 날라 다리를 거의 마무리한 게 아닌가. 아들을 살리고 싶었던 어머니는 딸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며 일이 늦어지게 만들었다.
결국 아들이 먼저 돌아와 내기에서 이겼고, 화가 난 딸이 치마에 있던 돌을 내리쳤는데 아직까지 그 돌이 박혀 있다고 한다. 약속한 대로 딸은 죽었고, 그녀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나머지 한 칸은 다른 사람이 마저 놓았다. 하지만 딸이 놓은 다리는 늘 그대로 있는데 다른 사람이 놓은 다리는 장마만 지면 떠내려간다고 한다.
이 밖에 이런 전설도 있다.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면 농다리가 며칠씩 우는데 한일병합 때와 6·25전쟁 때는 동네 사람들이 잠을 못 잘 정도였다고 한다. 또 장마에 농다리 상판이 뜨면 재앙이 일어나거나 훌륭한 인물이 죽는다고 전해진다. 동학혁명과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를 예고했다고 한다.
농다리가 물을 건너는 거대한 지네처럼 보이는 이유는 양쪽으로 튀어나온 교각 때문이다. 자연석을 축대 쌓듯 안으로 물려가며 쌓아올린 교각이 그 위에 올린 상판보다 넓어 지네발처럼 보이는 것이다. 길이 93.6m, 폭 3.6m, 교각 1.2m, 교각과 교각 사이 폭이 0.8m다. 상판은 두께 20㎝ 정도의 장대석을 얹어 만들었다. 이 다리는 심오한 동양철학을 근거로 만들었다고 한다. 교각에서부터 상판까지 붉은색을 띤 자석(紫石)을 사용했는데, 이는 음양의 기운을 고루 갖춘 돌이라는 고서의 기록에 따른 것이다. 본래는 별자리 28수에 따라 28칸의 수문을 만들었으나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4칸이 소실되고 24칸만 남아 있던 것을 지난 2008년 4칸을 복원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농다리가 있는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굴티(중리)마을은 상산 임 씨 집성촌이다. 고려 때 최 씨 무신정권의 뒤를 이어 권세를 잡았던 임연(林衍·?~1270)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농다리에 얽힌 전설도 임연과 관계된 것이 많다.
우선 다리를 놓은 사람과 관련해 임연이 놓았다는 전설과 그의 누이가 놓았다는 전설이 각각 구전돼 내려온다. 임연은 매일 아침 세금천에서 세수를 했는데, 추운 겨울날 건너편에서 한 젊은 부인이 내를 건너려는 것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자초지종을 물었다.
여인은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급하게 가는 길이라고 대답했다. 정황을 딱하게 여긴 임연은 용마를 타고 돌을 실어 날라 하루아침에 다리를 놓았다. 용마는 너무 힘겨워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는데, 그때 떨어진 돌이 용바위라고 한다.
두 번째 전설은 비극적이다. 굴티마을 임 씨에게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둘 다 힘이 장사라 서로 죽고 사는 내기를 했다.
아들(임연)은 굽 높은 나무신을 신고 목매기송아지를 끌고 서울에 갔다 오기로 하고, 딸은 다리를 놓기로 했다. 어머니가 보니 아들은 올 기미가 없는데 딸은 치마로 돌을 날라 다리를 거의 마무리한 게 아닌가. 아들을 살리고 싶었던 어머니는 딸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며 일이 늦어지게 만들었다.
결국 아들이 먼저 돌아와 내기에서 이겼고, 화가 난 딸이 치마에 있던 돌을 내리쳤는데 아직까지 그 돌이 박혀 있다고 한다. 약속한 대로 딸은 죽었고, 그녀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나머지 한 칸은 다른 사람이 마저 놓았다. 하지만 딸이 놓은 다리는 늘 그대로 있는데 다른 사람이 놓은 다리는 장마만 지면 떠내려간다고 한다.
이 밖에 이런 전설도 있다.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면 농다리가 며칠씩 우는데 한일병합 때와 6·25전쟁 때는 동네 사람들이 잠을 못 잘 정도였다고 한다. 또 장마에 농다리 상판이 뜨면 재앙이 일어나거나 훌륭한 인물이 죽는다고 전해진다. 동학혁명과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를 예고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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