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은 공직(public service)을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서비스업 종사자다. 일반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손님은 왕이다’라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듯, 공무원은 ‘국민은 왕이다’라는 내적·외적 자세를 갖춰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검찰이 과거 검찰청의 영문을 ‘prosecution office’라고 건조하게 표시했던 것을 ‘prosecution service’로 바꾼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러한 정신이 명칭 변칭에 끝나지 않고 검찰의 모든 구성원에게 내면화해 외적인 직무 수행에도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근 김현웅 서울고검장이 법무부 장관에 내정됐다. 지역 편중이나 전관예우의 문제점이 없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다만, 이른바 ‘기수 역전’(期數逆轉)이 문제가 된다고 한다. 현직 서울고검장이고 김진태 검찰총장의 사법연수원 2기 후배인 김 내정자가 법무부 장관이 되면, 김 총장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지휘를 받던 후배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종전의 관례대로 임기(任期)만료 이전에 검찰총장이 용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것을 의식했는지 청와대도 검찰총장 임기와 법무부 장관 내정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했다.
1988년 검찰총장 임기제가 시행된 이후 18명의 검찰총장이 임명됐지만, 임기를 채운 총장은 그 3분의 1인 6명에 불과하다. 그동안 검찰에서는 후배 기수가 선배 기수보다 고위직에 오르게 되면 후배의 업무 수행 부담을 덜어준다는 이유로 선배들이 사표를 내는 것을 미덕처럼 여겨왔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미덕이 아니라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다. 선배들이 남아 있다면 후배들에게 어떤 부담을 주었고, 과연 그것이 직무(職務)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의 것이었는지 궁금하다. 또한 선배들의 용단이란, 말이 용단이지 퇴직 후에도 고수입이 보장돼 있는 잘못된 구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지휘하는 것은 법적 지휘이지 인격적 지휘가 아니다. 거기에 선배, 후배라는 개념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적법한 지휘면 수용하고, 위법한 지휘면 거부하면 그만이다. 다만, 정치적 성격이 강한 법무부 장관의 입장과 법적 성격이 강한 검찰총장의 입장이 충돌하는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검찰총장이 자신의 법적 소신을 굽히고 법무부 장관의 정치적 성격의 적법한 지휘에 따랐더라도 그것은 법을 지킨 것이다. 정치와 법이 충돌할 때 언제나 법이 우선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법 스스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반면,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지휘에 따르지 않아도 아무런 법적 제재가 없다. 정치적 책임 문제가 발생할 경우 법무부 장관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지만, 검찰총장은 그럴 필요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정치적 책임을 의식하고 사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법을 어기는 것이다.
검찰총장 임기제는 검찰 스스로 만들어낸 게 아니고, 국민이 만들어준 것이다.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임명하지만, 검찰총장의 최고 임명권자는 국민이다. 국민은 스스로 뽑은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면서까지 검찰총장의 임기를 보장해 주었다. 이처럼 검찰총장 임기제에는 검찰의 독립성에 대한 국민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그리고 검찰총장 임기제는 검찰의 독립성 확보의 첫걸음이지 종착점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검찰은 지난 30년 가까이 독립성을 위한 첫걸음도 제대로 내딛지 못했다고 평가받아 마땅하다.
김 총장은 국민의 준엄한 명령과 염원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임기를 지켜야 한다. 자존심이라는 내적 압력과 자존심을 지키라는 외적 압력, 나아가 더 큰 정치적 사퇴 압력도 견뎌내야 한다. 훌륭한 장군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 적장의 가랑이 사이라도 기어가야 한다. 장군으로서 그러한 행동은 할 수 없다는 자신의 생각과 주변의 조언에 집착하다 승리의 기회를 날린다면 그 피해는 모두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나아가 김 총장은 이번 기회를 검찰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동안 자신의 직무수행에 대한 부정적 평가마저 불식할 수 있는 호기로 삼아야 한다. 그 첫걸음 역시 임기를 지키는 것이다. 내년에도 대한민국은 존속될 것이고, 그때 가더라도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과 그렇지 않은 검찰총장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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