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듀크대 대학원생의 주차장 생활기봉고차 월든 / 켄 일구나스 지음, 구계원 옮김 / 문학동네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는 1845년 부와 명성을 좇는 세계를 뒤로 하고 콩코드 주 월든 호숫가로 들어갔다. 통나무집을 짓고 2년 반 동안 자급자족 생활을 하며 ‘월든’을 썼다. 160여 년이 지난 2009년, 스물 여섯, 미국 대학원생 켄은 듀크대 캠퍼스 주차장 후미진 곳에 중고 봉고차를 세웠다. 남들 눈을 피해 2년 반 동안 거기서 먹고 자고, 때론 쥐와 사투를 벌인 그는 ‘봉고차 월든(Walden on Wheels)’을 썼다.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필사적으로 서두르고 이토록 무모하게 일을 추진할까”라고 자문했던 소로는 문명사회를 비판하고,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삶을 위해 월든 통나무집으로 갔지만 켄이 봉고차 월든에 들어간 이유는 비참하다. 대학 졸업 후 3년 가까이 저임 노동직을 전전하며 학자금 대출을 겨우 갚은 그는 대출 없이 대학원을 졸업하겠다며 160년 전 소로를 모델로 삼았다. 소로처럼 숲 속에 판잣집이라도 지을까 생각했던 그는 여러 현실적 이유로 봉고에 이르렀다. 샤워는 체육관에서, 전기는 도서관에서, 끼니는 캠핑용 버너로 해결했다.

2013년 미국에서 출간된 책은 목표 없이 대학에 들어갔다 취직도 못하고 눈덩이처럼 불어난 학자금 빚만 떠안게 된 미국 청년의 악전고투 분투기이자 눈물 나는 성장기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예쁜 여자와 결혼해 적당히 평균적 삶을 살 것이라는 기대가 좌절된 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몰려가는 성공신화를 회의하고, 빚을 내서 공부하고, 빚을 갚기 위해 취직하고, 다시 빚으로 차 사고 집 사는 ‘저당 잡힌 삶’을 의심하며,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감동적이다. 잉여세대, 삼포세대, 청년실업 같은 문제가 한국을 넘어 전 지구적 문제임을 보여주는 텍스트인 동시에 세대를 넘어 삶은 통조림처럼 균질화돼 순위로 매겨지는 시대에서 어떻게 자기만의 삶을 만들어가는가를 보여주는 귀한 사례이기도 하다. 그는 직접 몸으로 체득한 삶의 경험과 학교에서 배운 인문 지식이라는 두 줄기를 연결해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찌질한 젊은이에서 자유로운 시민으로 성장해간다. 그 속에서 번번이 좌절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 중심을 찾아간다.

책은 카트 정리 아르바이트에도 불구하고 학자금 대출빚은 갈수록 늘어나는, 뉴욕 주립대 졸업반 시절에서 시작한다. “대학에서 4년, 인간적으로 상당히 성장했지만 스물한살인 나는 여전히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며 여섯 살 때부터 천장에서 돌아가던 슈퍼 마리오 선풍기 아래에서 잠을 청하고, 여전히 카트 정리를 하고 있다. 새 경험을 갈망하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빚은 점점 불어나고 자유는 더욱 줄어든다.”(34쪽)

학생신문 편집자로 일한 그는 졸업을 앞두고 전국 25개 신문사의 유급 인턴에 지원했지만 25군데 모두 낙방한다. 3만2000달러로 늘어난 빚과 쓸모 없는 인문학 학사학위(역사학·영문학)가 가진 것의 전부인 그는 수십 번의 고배를 더 마셔야 했다. 게다가 대출금 때문에 엄마가 눈물을 쏟자 그의 목표는 빚갚기가 된다. 여행 가이드, 쓰레기 처리사, 야간 조리사, 평화 봉사단, 국립공원 산간 관리원, 택배 배달원 등 각종 저임 노동직을 전전해 가까스로 빚을 청산한 그는 앞으로 절대 빚은 지지 않겠다고, 하지만 공부는 계속하겠노라 결심한다. 바람대로 듀크대 인문교양 석사과정에 입학했고, 이 두 목표를 위해 봉고차 실험을 시작한다. 불편하고 불결하고 불안하고, 여기에 비밀 유지를 위해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야 하는 외로운 생활. 식사비를 아끼느라 허기에 시달리고 병에 걸리기도 했다. 비밀은 1년 만에 해제된다.

그 계기도 월든이었다. 대학원 첫 겨울방학, 월든 호숫가를 찾은 그는 그곳이 시내에서 멀지 않고 현대 문명의 흔적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소로 시대엔 이렇게 시끄럽진 않았겠지만 소로가 절대 사회에서 격리돼 혼자만의 삶을 산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자신만을 위한 실험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모두를 위한 실험이었다는 깨달음이었다. 숲 속 오두막에서 혼자 지내는 은둔자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타인의 인생에 의미있는 역할을 못하는 삶에는 만족할 수 없다는 인식. 그러니 문명 한복판에서 벌이는 자신의 경험도 함께 나눌 의무가 있다는 결론이었다. 그는 곧 비밀 봉고 생활을 온라인 잡지에 기고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뜨거웠고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다. 학교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듀크대는 캠퍼스 가운데 주차장에 자리를 내줬다. 자신만큼 구차하진 않지만 모두가 비슷한 위기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 예상치 못한 반응에 대한 그의 분석이었다. 유명해진 뒤에도 그는 변함없이 숱한 시행착오를 통과했고, 마지막엔 몸은 건강해지고 통장에 돈이 쌓이는 혁명적 변화를 만들어냈다.

성공이었다. 그는 2년 반 동안 캠퍼스 봉고에서 살았고, 통장 잔액 1156달러를 갖고 졸업식장에 섰다. 졸업생 대표로 연설도 했다. 이번 책에서도 여실히 증명된 유머러스하면서도 깊이 있는 글솜씨에 괜찮은 잡지사에서 연봉 4만 달러의 기자직도 제안받았다. 하지만 그는 봉고차를 팔아 오랫동안 꿈꿨던 알래스카행을 택했다. “페이지를 넘겨 인생의 새 장을 시작한다는 사실이 초조하긴 했지만 내 믿음과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단순하고 소박하게만 살아간다면 틀림없이 괜찮을 것이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쌓인 강의실 안에 앉아 있든, 대자연이라는 대학 캠퍼스를 걸어가든, 영원히 스스로를 학생이라고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괜찮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칫 흘려 보내기 쉬운 내면의 목소리, 내가 가장 필요할 때 그리고 가장 기대하지 않을 때 내 귓가에 속삭여주는 그 야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틀림없이 괜찮을 것이다. 자 어서 해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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