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한국 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메이저대회인 기아자동차 제29회 한국여자오픈 4라운드 경기가 열린 인천 청라 베어즈베스트 골프장. 챔피언 조인 박성현과 이정민의 샷을 보기 위해 갤러리가 구름처럼 몰렸고 두 선수의 샷 결과에 따라 ‘환호’와 ‘탄식’이 코스를 채웠다.
그런데 이날 불볕더위 속에서도 워키토키와 선글라스,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으로 두 선수를 꼼꼼히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홍두표(64) 삼진종합건설㈜ 회장이었다. 홍 회장은 대한골프협회(KGA) ‘경기 부위원장’. 이날 챔피언 조를 동반한 ‘필드 위의 포청천’이었다.
홍 회장은 클럽챔피언을 역임한 ‘아마 고수’이자 알아주는 ‘룰 박사’다. 10년 전 KGA 경기위원이 된 홍 회장은 1년에 10여 차례 이상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경기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기위원이 되려면 룰 실력뿐 아니라 사회적인 평판이 좋아야 한다. 그래서 클럽챔피언을 역임했거나, 자발적으로 룰 지식을 갖춘 전·현직 기업인이 많다. KGA 경기위원은 월급 한 푼 없는 ‘무보수 봉사직’이다. 교통비 명목으로 한 대회당 20만 원을 받는 게 전부. 지방에서 대회가 열리면 자비가 더 많이 드는 경우도 있다.
홍 회장은 “예전에는 6∼7개 정도 대회를 다녔는데 ‘부위원장 감투’를 달고부터는 10개 대회 이상으로 늘었다”며 “올해에는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와 국제군인선수권대회가 있어 더 바빠질 것 같다”고 말했다. 대회가 열리면 오전 4시 30분에 일어나 골프장으로 ‘출근’해야 한다. 그리고 오후 9시에 숙소로 들어가기 일쑤다.
홍 회장이 이처럼 돈도 안 되는 고생을 자처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일찌감치 자수성가하며 중견 건설사 오너가 된 홍 회장은 “골프 덕에 ‘바른 생활 사나이’가 됐으니 골프를 배운 건 행운이었다”며 “골프로 재능 기부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홍 회장은 또 “아내가 늙어 고생을 사서 한다며 반대를 많이 했지만 그래도 보람이 더 크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며 “지금까지의 인생을 가장 재미있고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고 활짝 웃었다.
홍 회장의 부모는 성인병으로 모두 일찍 돌아가셨다. 그래서 홍 회장은 젊은 시절부터 건강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써왔다. 홍 회장은 “36세 때 시작한 골프가 지금까지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였다”며 “당시만 해도 체중이 80㎏에 육박해 고민하던 중 골프를 배웠다”고 설명했다.
홍 회장의 ‘경기위원 봉사’는 여주 골프장에서 경기위원장을 하면서부터 시작됐다. 1995년부터 여주 골프장 클럽챔피언을 2년 연속 제패한 홍 회장은 그해 전국 클럽대항전에 여주CC 대표로 나가 우승했고 이듬해 조니워커 아시아클럽대항전에도 출전해 2위를 차지했다. 홍 회장은 “사회생활에서 전인 교육이 필요하듯이 챔피언이면 골프 실력뿐 아니라 룰도 잘 알아야 하고, 에티켓도 잘 지키고, 매너도 좋아야 한다는 게 소신이었다”고 말했다.
골프장에서는 매너와 실력뿐 아니라 룰에 해박한 지식까지 갖춘 그를 ‘필드의 신사’라고 불렀다. 이런 입소문 덕에 KGA로부터 경기위원 제의가 왔다. 자신을 추천한 지인에게 ‘민폐’가 되지 않게 스스로 ‘룰 아카데미’에 응시해 테스트를 통과했다. 홍 회장은 지금도 하루 2시간 이상 룰 공부를 하고, 골프규칙 재정(판례)집은 외우다시피 한다. 지인들이 라운드 중 전화로 룰 적용 다툼이 있다면서 물어올 때가 많지만 대부분은 즉석에서 룰 ‘몇 조, 몇 항’을 거명하며 곧바로 판정을 내리곤 한다. 하지만 그 역시 사람인지라 간혹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때면 늘 갖고 다니는 ‘재정집’을 통해 확인해줄 때도 있다.
서울올림픽 직전이던 1987년 ‘서머타임’이 시작됐다. 퇴근한 뒤의 저녁 시간이 길어지면서 연습장에 등록해 골프를 배웠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모든 걸 잘하고 싶었던 홍 회장의 규칙적인 생활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골프는 그를 바른 생활의 사나이로 만들어줬다. (골프가) 운동이 돼서가 아니라 술을 안 먹으니 일찍 들어가서 쉬고, 규칙적인 생활을 했더니 건강이 찾아왔다는 설명이다. 아무래도 술을 마시면 퍼팅 감각이 둔해지기 마련. 골프에 빠진 뒤 술자리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골프가 너무 재미있어 집에서 NHK에서 제작한 7편짜리 ‘스즈키 젠코의 비디오 레슨’ 테이프가 닳도록 보면서 기량을 익혔다.
필드에 자주 갈 수 없어 주말에는 ‘회원의 날’을 택해 이용했다. 당시 여주골프장과 수원골프장 회원권을 샀다. 첫째·셋째 주는 여주로 , 둘째·넷째 주엔 수원골프장에 나갔다. 골프를 배운 지 5개월 만에 경기 용인 프라자 골프장에서 78타를 쳐 첫 ‘싱글 패’를 받았다. 이후 한 번도 70대 타수를 벗어나지 않았다. 짧은 기간에 기량이 급성장한 데는 첫 라운드 때부터 모아온 스코어 카드의 역할이 컸다. 똑같은 실수를 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카드를 모았고, 다음번 같은 골프장 나갈 때는 그 스코어 카드를 보면서 복기를 했다. 몇 년 동안 120장의 스코어 카드를 모았다. 20차례 이상 라운드한 골프장이 많고, 그만큼 실수를 줄일 수 있었다. 베스트 스코어는 챔피언 티에서의 7언더파 65타. 요즘도 70대 후반 정도의 스코어를 유지하고 있다. 홍 회장은 “최근 경기위원이 되는 방법을 문의하는 아마추어 골퍼들이 많다”면서 “경기위원이 되려면 룰 지식에 밝아야 하고, 건강과 시간의 할애 등 여러 조건이 있지만 무엇보다 봉사 정신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인천 =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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