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민 / 정치부 선임기자

25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며 밝힌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메시지는 “배신의 정치, 국민이 심판해 달라”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국민을 상대로 직접 묻는다. “나를 더 신뢰합니까, 정치권을 더 신뢰합니까.” 박 대통령의 무기는 ‘국민은 정부보다 국회를 더 불신한다’는 확신이다.

박 대통령이 증오하듯 토해낸 ‘배신의 정치’의 탄착점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다. 그 옆에서는 김무성 당 대표가 불안한 눈길로 이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 박 대통령(박통)과 김 대표(무대), 유 원내대표(유대)가 진짜 생각하는 건 이렇지 않을까.

# 박통

유대, 당신이 내 속을 뒤집어놓은 게 한두 번이야. 증세·복지 논쟁부터 사드 논쟁까지.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 때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떠들었잖아. 그게 여당 원내대표가 할 소리야. 이번 공무원연금 협상에 국회법을 끼워 넣은 건 도저히 이해 안 돼. 정부의 행정을 국회가 일일이 간섭하겠다는 거야 뭐야. 유대가 원내대표 된 뒤 당·청 관계가 얼마나 어려워졌어. 솔직히 공무원연금법 협상은 여당의 꽃놀이패였어. 그런데 여당을 분열시켰잖아. 난 대통령이야. 나를 따르라구. 그거 못하겠다면 제아무리 선출직이라도 그만둬야지. 유대 당신을 믿을 수가 없어. 당신이 결단하지 않으면 내가 결단한다. 탈당이든 뭐든. 무대도 똑똑히 들어.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배신’이야.

# 무대

당·청이 엉망 된 게 어디 우리 책임이야. 김기춘 비서실장 때 당한 거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아. 그나저나 당·청이 파국은 면해야 해. 난 할 일이 많은 사람이거든. 박통에 맞섰다가는…. 거부권 받아들이고 국회법을 재의에 부치지 않기로 바람 잡은 것도 다 이유가 있어. 하지만 유대 사퇴론은 좀 그래. 솔직히 우리 당 최고위원 8명 중에 유대 물러나면 얘기 나눌 사람도 없어. 이인제·김을동 다 돌아섰고 김태호는 요즘 나한테 엉기잖아. 서청원·이정현은 꼴통 친박들이고. 사방이 적이야. 유대도 내 말 좀 들어. 그렇게 뻣뻣하게 해서 TK(대구·경북)의 ‘포스트 박’이 되겠어. 당신이 대통령과 각 세우면 내가 힘들어. 아, 머나먼 대권의 길 어떻게 가야 할지 정말….

# 유대

내가 박통을 짝사랑했나. 공무원연금 개혁은 대통령을 위해서라도 잘하려 했어. 그만하면 잘했구. 국회법은 솔직히 ‘출구’였을 뿐. 일단 끼워 넣고 나중에 처리 안 해주면 되는 거잖아. 난 칭찬받을 줄 알았어. 근데 저러니 정말 서운해. 날 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천막당사 시절 비서실장으로 모신 것도 나였고, 2007년 대선 경선 때 무대와는 달리 난 박통 옆을 지켰어. 내가 뻣뻣한 건 그냥 스타일일 뿐이야. 날 쫓아내겠다고? 그건 아니지. 이런 식으론 사퇴 못해.…그런데 앞으론 어떻게 해야 할지. 이렇게 원내대표 계속 한다 해도 박통 눈치만 살펴야 할 텐데. 소신을 굽혀야 할 일이 많아지겠지. 그게 잘사는 건가. 난 어떻게 해야 하나.

minski@munhwa.com
허민

허민 전임기자

문화일보 / 전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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