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참정권 허용 100년만에“여성 대통령이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다는 게 놀랍지는 않아요. 다만 이렇게 오래 걸린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꼈어요.” 지난 2005년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이야기를 다룬 ABC 드라마 ‘커맨더 인 치프(Commander in Chief)’에서 주인공 매켄지 앨런 역을 맡았던 배우 지나 데이비스(59)가 지난 4월 17일 CNN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5일 전 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67) 전 국무장관이 2016년 미국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데 대한 소감을 묻는 인터뷰였다. 이 드라마는 당시 2008년 미 대선 민주당 후보 경선에 나섰던 클린턴을 염두에 두고 제작했다는 음모설에 휩싸이며 주목을 받았다. 기사DB서비스 ‘렉시스-넥시스’는 데이비스와 클린턴을 비교 언급한 뉴스 건수가 한 달 사이에만 918건을 기록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 힐러리의 여성 대통령‘설(說)’=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지난 13일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뉴욕 이스트리버 루스벨트섬의 포 프리덤스 파크에서 5000여 명의 지지자가 모인 가운데 대선 출마 선언 이후 첫 대중연설을 했다. 그는 “내가 역대 가장 어린 대선 후보는 아닐 테지만, ‘미국 역사상 가장 젊은 여성 대통령(youngest woman president in the history of the United States)’이 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이는 힐러리 본인이나 칼리 피오리나 공화당 대선 예비후보자가 본선 후보에까지 올라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일어날 일의 의미를 강조한 말이다.

이어 “아버지가 딸에게 ‘그래 무엇이든 네가 원하는 사람,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될 수 있단다’고 말할 수 있는 나라로 미국을 만들고 싶다”는 클린턴의 발언에는 40대 이상의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여성 차별 시대에 대한 기억이 담겨 있다. 미국 여성에게 참정권이 허락된 1920년 이후 100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미국인들은 과연 첫 여성 대통령의 탄생을 허락할까. 19일 린 바브렉(정치학)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가 뉴욕타임스(NYT)의 데이터저널리즘 전문 섹션 ‘업샷(The Upshot)’에 ‘여성 대통령에 대한 시각이 변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올려 미국 첫 여성 대통령의 탄생 가능성을 짚었다.

◇코앞까지 다다른 미국 여성 대통령 시대 = 바브렉 교수는 지난 세기 동안 미국인들의 여성에 대한 인식 변화 양상을 ‘점진적(gradual)’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동시에 여성 대통령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흔쾌히 받아들이는(accepting)’이란 또 다른 단어가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전미선거연구(ANES)는 지난 40여 년간 꾸준하게 ‘여성과 남성이 사업장이나 정부 등 일터에서 동등해야 하는가’를 묻는 설문조사를 시행해 왔다. 첫해인 1972년엔 응답자의 29%나 ‘여성이 있어야 할 곳은 집’이라고 답했지만, 이 수치는 점차 감소해 마침내 지난 2008년에는 7%로 떨어졌다. 이는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1937년부터 실시해온 ‘여성 대통령을 뽑을 것인가’라는 더 구체적인 설문에 대한 답변에서도 뚜렷하게 발견되는 변화상이다.

1960년대 후반까지도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여성 대통령의 탄생을 반대했지만, 1970년대 들어서부터 여성 대통령을 지지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바브렉 교수는 “유권자들의 대답과 실제 행사한 투표에는 차이가 있지만, 주목할 만한 변화”라고 평가한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은(코네티컷대 산하 여론조사기관 로퍼센터에 따르면 95%가) ‘여성과 남성이 직업적으로 평등하다’거나 ‘여성 대통령을 뽑을 수 있다’고 답하고 있다. 응답자의 연령대와 교육 수준, 소득별로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수십 년을 통틀어 여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 속도와 양상은 전반적으로 유사한 궤도를 보인다.

드라마 ‘커맨더 인 치프’에서 대통령이 된 부인 앨런을 외조한 미국 최초의 영부군 로드 캘로웨이는 백악관 내 영부인 방에 입성하며 “온통 핑크네요”라고 말했다. 2016년 말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입에서도 이 같은 발언이 나올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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