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산화한 군인들의 희생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당시 정부의 이해하기 힘든 행태를 보고 자연스레 ‘헛된 죽음’이란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렸습니다.”
2002년 제2연평해전 당시 국군수도병원 군의관으로 의무병 박동혁 병장 등 부상자들을 치료했던 강원대 의대 이봉기(45·사진) 심장내과 교수는 29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교수는 “의료진의 혼신의 노력에도 불구, 사고 발생 84일 만에 박 병장이 운명한 뒤 장례식장은 정부 고위인사, 군 수뇌부 누구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썰렁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당시 군 통수권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월드컵 폐막식 참석을 위해 일본으로 갔다”면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고귀한 희생이 자칫 ‘헛된 죽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같은 군인으로서 너무나 비참했고 국가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고 회상했다.
“군인들이, 의무병이 다치고 죽고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국가가 앞으로는 절대로 군인들을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됩니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자신이 잘못되면 남은 가족들한테 국가가 엄청 잘해주고 뒤를 든든히 돌봐주고, 대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군인들이 몸을 던지지 않겠습니까.”
지난 1일 영화 ‘연평해전’ 시사회 때 부상자와 사망자 유족들과 오랜만에 만난 이 교수는 의무병으로 자신이 혼신을 다해 치료했던 박 병장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후송돼온 부상자 중 의무병이던 박 병장이 제일 많이 다치고 파편도 많았습니다. 생존자들에게 물어보니 전투병들은 은폐·엄폐하며 몸을 숨기지만 의무병은 여기저기서 부상자들이 부르는 소리에 뛰어다니느라 자기 몸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고 했어요. 총탄과 파편에 맞아도 아픈 줄 모르고 뛰어다니던 장면이 영화 속 전투 장면 그대로였다고 생존자들이 증언했습니다.”
이 교수는 “부모님과 동료들 얘기를 들어보니 박 병장은 착하고 정이 많고 남 생각을 많이 하는 굉장히 괜찮은 젊은이였다”며 “박 병장이 사망하던 날 저를 비롯한 모든 의료진 가슴에도 구멍이 뚫렸다”고 회상했다.
이 교수는 “물과 피가 섞여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총알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사람들이 쓰러지는 장면을 보고 전투장면의 전율이 소름 끼치도록 생생하게 전해왔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 교수는 2003년 딸에게 ‘유진아, 네가 태어나던 해 아빠는 이런 젊은이를 보았다’는 글을 의료전문지 수필공모전에 응모해 수상한 바 있다.
정충신 기자 csjung@munhwa.com
사진=국방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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