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라도 상업적으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미국 시사잡지 타임이 선정한 ‘2012년 최고의 발명품’이었던 구글의 착용형(웨어러블) 기기 구글 글라스의 실패가 대표적이다. 좋은 기술이 실패하는 이유는 기술 위주의 사고방식으로 시장의 기대와 요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30일 포스코경영연구원에 따르면 혁신적 기술이 시장에서 실패하는 원인은 크게 △나르시스형 △이카루스형 △아킬레스형 △시시포스형 등 4가지로 구분된다.
나르시스형은 기술에 대한 지나친 확신과 자아도취로 대체기술의 등장 가능성이나 가입자들의 실제 구매 의도 등을 간과했을 때 발생하는 실패 유형으로 꼽힌다. 대표적 사례로는 모토로라의 위성전화 사업이었던 ‘이리듐’과 애플의 세계 최초 개인휴대용단말기(PDA) ‘뉴턴 메시지 패드’가 거론된다.
이리듐은 780㎞ 상공의 저궤도 통신위성들을 이용해 전 세계를 하나의 통화권으로 묶는 최초의 범세계 위성휴대통신 서비스다. 지난 1989년 추진 당시 미국의 모토로라를 주축으로 일본, 러시아, 대만, 중국, 한국 등 세계 15개국 47개 주요 통신 업체들이 투자에 나서 1997년까지 72개 위성을 발사했다.
그러나 서비스 개시 1년 후 모토로라는 이리듐 사업을 중단했다. 1990년대 후반 등장한 개인형휴대통신(PCS) 디지털 기술이 순식간에 아날로그 시장을 대체하면서 기존 지상 기지국을 이용해 더욱 싼 가격에 글로벌 음성통화가 가능한 로밍 서비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리듐을 지원하는 단말기는 3500달러에 달했으며 통화료 역시 분당 4∼7달러로 매우 고가였다. 결국 1999년 8월 44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를 갚지 못하고 프로젝트는 폐기됐으며 총 손실은 94억 달러에 육박했다.
1993년 애플이 출시한 세계 최초 PDA 뉴턴 메시지 패드는 7인치 크기에 흑백 터치스크린을 장착했으며 일정관리는 물론 메모 송수신, 팩스 전송, 펜을 이용한 직접 필기 기능 등이 탑재된 매우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그러나 1998년 단종됐다. 시대를 너무 빨리 앞서 갔다는 것이 문제였다. 당시 소비자들은 PDA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했고 초기 판매가격(699달러)이 비싼 것도 문제였다.
이카루스형은 시장을 장악하려는 과도한 욕심으로 자사가 개발한 기술을 시장에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기술개발의 폐쇄성을 고집할 때 발생하는 실패 유형이다. 소니의 베타맥스 비디오 녹화 기술 등이 대표적이다. 1975년 홈 비디오 시대가 개막되면서 소니는 베타맥스 테이프를 개발해 시장 선점을 노렸다. 경쟁 기술은 마쓰시타(파나소닉)가 주도하는 VHS. 베타맥스는 VHS에 비해 크기가 작아 휴대성이 뛰어났고 화질 측면에서도 우월했다.
그러나 베타맥스는 시장에서 표준이 되지 못하면서 퇴출된다. 기술적 우위를 기반으로 폐쇄적 라이선스 정책을 내세운 데다가 고가전략을 유지한 것이 실패 요인이었다. 특히 소니는 영상물에 폭력적, 선정적 내용을 담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클린 정책’을 고수한 반면 VHS 쪽은 성인 비디오 제작사들과 협력해 북미 비디오 시장을 점령했다. 한 가정에서 베타맥스 방식과 VHS 방식의 비디오테이프 재생기를 모두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었고, 소비자들은 화질은 떨어지지만 더 많은 콘텐츠를 볼 수 있는 VHS를 선택했다.
아킬레스형은 상용화에 치명적인 약점을 간과해서 발생하는 실패 유형이다. 미국 벤처업체 세그웨이가 2001년 내놓은 1인용 전동 스쿠터 세그웨이는 출시 당시 ‘출퇴근 풍경을 바꿀 획기적 제품’ ‘인터넷 이후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나 5개월 동안 6000대 판매에 그치며 실패했다. 대다수 국가는 세그웨이가 너무 빠르고 부피가 크다는 이유로 인도에서 운행을 허용하는 법규를 마련하지 않았다. 심지어 2003년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세그웨이를 타다 넘어지는 장면이 보도되면서 TV의 개그 소재로 전락했다.
시시포스형은 처음부터 기술개발 방향이 애매했거나 잘못돼서 헛고생만 하다가 실패하는 유형이다. 1960년 말 설립된 제록스팰로앨토연구소(PARC)가 대표적 사례다. 당시 제록스는 정보기술(IT) 산업 진출 포석으로 PARC를 설립하고 당대 최고의 IT 엔지니어와 프로그래머를 영입했다. 그러나 IT 사업에 대한 비전과 전략 방향성 부재로 레이저 프린팅을 제외하고 대부분 기술의 상업화에 실패했다.
박용삼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기술 개발 아이템 선정부터 투자, 상용화에 이르기까지 자주 발생하는 실패 위험들을 리스트업하고 주기적 점검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신사업 추진 시 기술적 리스크 관리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 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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