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춘천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동보호전문기관 그룹홈 앞마당에서 김영숙 심리치료 교사가 아이들에게 꽃을 심는 방법을 지도하며 원예치료를 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강원 춘천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동보호전문기관 그룹홈 앞마당에서 김영숙 심리치료 교사가 아이들에게 꽃을 심는 방법을 지도하며 원예치료를 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김영숙 심리치료 교사

“마음을 굳게 닫은 아이들이 식물을 직접 재배하면서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품성이 변하는 것을 보면 제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낍니다.” 강원 춘천시에 자리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강원도아동보호전문기관 그룹홈(부모 갈등·학대 등으로 가족과 함께 살 수 없는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생활 시설)의 앞마당은 식물원을 방불케 했다. 크고 작은 화분에는 토마토, 딸기는 물론, 채송화나 나팔꽃이 덩굴을 이루며 자라고 있었다. 다육식물과 알로에도 푸르게 커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전문 농업인이 가꾼 것이 아니다. 모두 그룹홈 아동들이 손수 키운 것이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6명의 아동은 학교를 다녀오면 화분에 물을 주고 돌보며 생명이 자라는 것을 배운다. 이를 지도하는 중심에는 김영숙(여·41) 심리치료 교사가 있다.

김 교사는 지난해 6월부터 매주 1회씩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식물을 키우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6월 29일에도 김 교사는 이곳에서 생활 중인 김모(10) 양 등 학생들에게 물을 주는 법과 식물을 재배하는 시범을 보이며 지도하고 있었다.

심리치료를 담당하는 김 교사는 원예 치료를 주로 해왔다. 중학생 시절 국어 선생님을 존경해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그가 원예 분야로 눈을 돌렸을 때는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춘천시에 정착한 그는 남편과 버섯농장을 시작했다. 햇빛 차단부터 온도·습도 조절까지 손이 가는 게 한둘이 아니지만, 씨균이 싹을 틔우고 튼실하게 버섯으로 자라는 것을 보면서 벅찬 성취감을 맛봤다.

그러다 이듬해 춘천여중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면서 원예치료의 힘을 알게 됐다. 이 학교에서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 방과 후 수업으로 원예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의 보조 교사로 참여하면서 내성적이고 소극적이었던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다. 이 중에는 춘천농고를 선택해 농업전문가로서의 길을 가게 된 아이도 있었다. 원예를 통한 심리치료가 진로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식물을 손수 키우며 미래를 설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 김 교사는 곧바로 한국원예치료복지협회에서 원예치료사(2급) 자격증을 취득해 이 길로 접어들게 됐다. 지금은 남춘천초, 금병초, 강원사대부고, 화천초, 홍천여고 등 정규 교육기관은 물론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에서 원예치료 프로그램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 교사는 “농촌이 대부분인 강원지역에는 부모가 없는 조손가정이 많아 세대 차이를 겪다가 엇나가는 청소년들을 쉽게 볼 수 있다”면서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식물을 기르는 데 능숙한 경우가 많아 학생들이 원예치료를 받으면서 조부모를 이해하고 서로 가까워지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 교사가 강원도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지도하는 아동 중에는 최모(14) 군이 있다. 최 군은 어릴 적부터 부모의 방임 탓에 스스로 위생관리를 전혀 못 할 정도로 생활습관이 엉망이었다. 지난해 5월쯤 학교 상담교사의 신고를 받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최 군의 가정을 방문했을 때 집안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고 한다. 곳곳에 바퀴벌레가 다니고, 냉장고는 고장이 나서 음식이 상하고 곰팡이가 피어 있었던 것.

최 군은 곧바로 누나(15)와 함께 그룹홈으로 옮겨졌다. 처음에는 집과 떨어져 지내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지만, 지금은 식물 치료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스스로 씻는 습관도 생겼다.

최 군이 변화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 9월 교외 식물원에서 진행된 수업이다. 각자 기르고 싶은 식물을 고르도록 했을 때 최 군이 선택한 식물은 네펜테스(벌레잡이통풀)였다. 물을 자주 줘야 해서 관리가 쉽지 않은 식물이지만 최 군은 네펜테스를 정성껏 가꾸면서 원예치료 수업에 적극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토마토나 딸기, 상추 등 식용작물을 스스로 요리하고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선물하는 등 성격도 적극적이고 외향적으로 변해갔다. 지금은 친구들에게 식물을 재배하는 법을 가르칠 정도로 모범생이 됐다. 최 군은 ‘식물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가고 있다. 함께 그룹홈 생활 중인 최 군의 누나도 원예치료 이후로 학교 성적이 크게 향상됐다.

김 교사는 아이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선물’이라고 표현한다. 학생에게나, 김 교사에게나 보람찬 일이기 때문이다.

김 교사는 앞으로 원예 분야에 전문가가 되기 위해 강원대 원예학 석사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최근에는 원예치료센터를 열어 교육 프로그램을 체계화하고 있다. 김 교사는 “자연 속에서 생명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며 “앞으로는 청소년은 물론 일반인과 노년층, 장애인 등 다양한 계층에 적합한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춘천=박성훈 기자 pshoon@munhwa.com
박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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