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계좌 개설’ 소비자만 불편 은행들 요구서류 ‘제각각’… 사전 홍보도 제대로 안돼

주부·취준생 등 비직장인 증빙자료 없으면 개설 못해


서울의 한 유통회사에 다니는 정모(30) 씨는 최근 회사에 휴가까지 내고 은행에 월급 입출금을 위한 계좌를 새로 개설하러 갔다가 “재직증명서를 떼오지 않아 통장 발급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분통을 터뜨려야 했다.

“다시 휴가를 내기 어렵다. 월급이 들어오는 통장을 만든 것이 뭐가 문제냐”고 하소연했지만, “최근 대포통장 발급 방지를 위해 규정이 강화돼 어쩔 수 없다”는 창구 직원 말에 정 씨는 도리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시중은행들이 대포통장 개설을 근절하겠다는 명분으로 신규 입출금 계좌 개설 절차를 강화한 데 따른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4월 금융감독원이 대포통장을 막겠다며 각 금융사가 신규 계좌를 개설하려는 고객에게 ‘거래목적확인서’를 요청할 것을 권고하면서 은행별로 통장 발급 시 재직증명서와 소득증빙서류, 사업자등록증 등의 서류를 요청하는 곳이 늘었다.

하지만 사전 홍보가 제대로 안 됐을 뿐만 아니라, 요구하는 서류도 은행별·영업점별로 달라 소비자들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주부나 자영업자, 취업준비생과 같은 비직장인들은 은행에서 요구하는 증빙자료를 제출할 수 없어 통장 개설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문화일보가 8개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신규 입출금 통장 발급 규정을 조사한 결과, 동일한 조건이더라도 은행마다 개설에 필요한 요구 사항이 달랐다. 우리은행이나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경우 급여통장을 개설하고자 할 경우에는 명함·재직증명서·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 등 소득증빙서류를 요구했고, 사업자통장은 물품공급계약서(계산서)·납세증명원·(전자)세금계산서·부가가치세증명원·재무제표를 요구하는 등 매우 까다로웠다. 반면 IBK기업은행과 KDB산업은행은 아무런 증빙서류 없이도 신규 계좌 개설이 가능했다.

대포통장 근절 대책으로 이처럼 신규 통장 개설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금융당국의 방안에 대해 시중은행 안에서도 불만이 나온다.

지점 창구직원 관계자는 “다른 방법으로 대포통장을 충분히 근절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대책으로 애꿎은 은행 창구 직원과 고객만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고 불만을 토했다.

박정경 기자 verit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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