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구제금융 연장 협상이 결렬됐고,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국제 채권단의 요구 조건을 국민투표에 부침으로써 국민을 국제 협상 테이블에 끌어들였다. 국제 협상에서 국내 여론을 활용하는 투 레벨 게임은 국제정치의 이차방정식에 해당하는 전략이다. 정부 간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 일어나는 반대 시위는 협상력을 높이는 데에 은근히 도움이 되지만, 그리스 정부는 노골적으로 채권국의 요구에 반대하라고 국민을 부추긴다.
국가부채에서 탈출하는 방법으로는 경제 성장, 증세(增稅), 통화 증발, 구제금융, 채무불이행 등 많은 방법이 있다. 그런데 그리스 정부는 착한 구제금융과 채무불이행을 카드 패로 내밀며, 과도한 긴축정책을 강요하면 국민의 이름으로 파산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번 일요일의 국민투표 결과가 주목된다.
그리스 국민의 다수는 채권단이 제시한 긴축정책에 반대하지만, 유로존에는 남기를 원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리스 정부도 만일 유럽연합(EU)이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퇴출시킬 경우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등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실 유럽조약에 탈퇴 조항은 있지만 퇴출 조항은 없다. 유럽 공동체가 구심력을 상실하면서 구조조정 필요성이 생겨나고 있다. 만일 EU가 그리스에 대해 규정에 없는 퇴출을 시키려면 모든 회원국이 모여 긴 논의를 통해 충분한 명분을 갖춘 정치적 결정을 도출해 만장일치로 합의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스의 힘은 유럽의 안정을 해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실패 국가가 벼랑 끝 전술을 쓰며 EU를 흔들고 있다. 급진좌파 시리자 정부는 온건 노선을 외교적 수모로 간주하고, 강경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그리스 정부는 국민에게 고통 분담을 호소하는 대신 국제 채권단과의 싸움에 국민을 동원하고 있다. 유럽 통합의 아버지들은 공동 번영과 영구 평화를 통합의 목표로 삼았고, 그동안 유럽 모델은 성공 스토리였다. 하지만 그리스 사태가 유로존에 도미노 현상을 일으킬 경우 유럽의 꿈은 무너질 것이다. 채권국이 그리스와의 협상에서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같은 남유럽 국가에서 부채(負債) 탕감과 긴축재정 반대가 재현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리스와 채권국이 서로 팽팽히 맞서는 또 다른 이유는 의식과 문화의 차이다. 남유럽 국가는 국민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는 온정주의적 문화를 가진 반면, 북유럽에서는 국민의 자기 책임성을 강조하는 문화가 강하다. 그리스 정부는 빚을 진 사람의 책임을 엄중하게 묻기보다 그들의 면책에 더 관심이 있다.
그리스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부채는 발톱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는 유로존 가입 이후 북부 유럽에서 유입된 저금리 자금에 열광하며 개인과 정부 모두가 지출을 크게 늘리면서 부채의 늪에 빠져들었다. 우리나라도 최근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려는 정책에 따라 모럴 해저드가 생겨나고 있다. 저금리정책은 본질적으로 빚쟁이는 웃고 저축자는 울게 만든다. 최근 저리의 대출 자금이 주식과 부동산으로 몰려드는 조짐이다. 조급한 경제 살리기 정책이 국민과 국가를 부채의 늪으로 빠뜨리는 건 아닌지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의 의식과 문화가 남유럽과 북유럽 중 어디에 더 가까운지 곰곰이 생각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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