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 시인이 지난 10여 년간 자신의 시의 무대가 된 사당3동 윗동네를 걷고 있다. 지난 6월 22일 동네 산책에 나선 시인은 최근 몇년 사이 동네의 많은 풍경들이 사라졌다며 자신의 시공간 또한 없어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황동규 시인이 지난 10여 년간 자신의 시의 무대가 된 사당3동 윗동네를 걷고 있다. 지난 6월 22일 동네 산책에 나선 시인은 최근 몇년 사이 동네의 많은 풍경들이 사라졌다며 자신의 시공간 또한 없어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2) 시인 황동규의 현충원 뒷동네

현대인에겐 세상이 타관이다. 그러나 그에겐 세상의 어떤 곳이 정든 타관이 될 수 있다. 주로 학교나 시내에서 시간과 세월을 보내다가 12년 전 은퇴하면서 산책을 시작한 사당 3동 윗동네가 내 정든 타관이 되었다. 현충원을 둥글게 감싸고 있는 서달산 능선에 친 담장 바깥쪽 숲과 그 숲 바로 아랫동네가 ‘윗동네’였다. 그 동네 초입에서 25년 이상 살고 있는 내 성냥갑 아파트와는 달리 그곳에는 자기 식으로 건물을 짓고 조그만 뜰이나마 정성껏 가꾸는 집들이 있었고, 조그맣지만 없는 게 없어 보이는 상점들이 있었다. 뛰어노는 아이들과 친근하게 대하는 개와 고양이들이 있었다. 이따금 동네 사람들끼리 벌이는, 언성만 높이다 마는 싸움도 있었다.

8년 전인가 현충원 후문이 날 때까지 처음 몇 년은 담을 끼고 도는 길에 있는 학수 약수터와 동네 맨 위쪽의 관운장을 모신 ‘남묘(南廟)’까지 갔다 오곤 했다. 가는 길이 넷이 있어 오르내릴 때마다 중간에 길을 바꾸면 수십 가지 산책길이 되는 단조롭지 않은 산책이었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예기치 못한 꽃을 만나기도 했다.



잿빛 소리로 공기를 적시며 비 내리는 저녁

늦 산책에서 돌아오다 만난 이층집 미니 뜰

서로 기대거나 넘어져 누운 줄기들 속에

혼자 고개 쳐들고 서 있는,

안개처럼 자욱이 내리는 잿빛 음성에

붉은 입술 붉은 혀 내밀고 있는 장미 한 송이.

어느 결에 빗소리에 침이 마른다.

혀와 음성, 붉은색과 잿빛이 입 마주대고

서로를 맛보고 맛보여주고 있는가?

(‘늦가을 저녁비’ 첫머리)



쓸쓸한 늦가을이 잠깐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장면이다. 그런가 하면 오전에 일을 많이 해 지쳐서 현충원이나 학수 약수터까지 가기엔 좀 벅차 ‘남묘’까지 갔다 오려고 집을 나섰으나 그냥 거기만 갔다 오기엔 너무 짧은 거리라 일부러 이 골목 저 골목 에둘러 가다가 인연인 듯 우연인 듯 만나 2년 연속 발을 헛디디게 한 꽃도 있었다.



아직은 집에서 너무 지척인 남묘를 향해

일부러 이 골목 저 골목 에둘러 가다가

마지막으로 꽤 숨찬 언덕길을 오르다 만나는,

담을 헐고 만든 꽃밭, 허나 다른 꽃들 다 자리 뜬 조그만 마당에

부용꽃.

내가 여름 꽃 하나만 그린다면

파스텔로 빛깔, 모양, 줄무늬까지 뜨고 싶은 저 꽃.

떠질까, 냉수로 새로 막 부신 듯한 저 느낌?

발길을 멈춘다. /작년 여름에도 그랬지.

오늘처럼 무더운 날 오후 저 꽃은 별안간

트라이앵글 소리를 냈어.

이번에도 쟁! /또 한번 쟁!

이번에도 발을 헛디딘다.

(‘저 꽃’, 앞 2행 생략)



재개발에 들어간 황동규 시인의 아파트 아랫동네 곳곳에 ‘공가’라는 글이 적혀 있다.
재개발에 들어간 황동규 시인의 아파트 아랫동네 곳곳에 ‘공가’라는 글이 적혀 있다.
초고 상태로 컴퓨터 속에 오래 들어 있다가 3년 전엔가 완성된 이 시는 바뀌기 전의 동네 산책길을 잘 보여준다. 지금 이런 광경은 없다. 몇 년 사이에 단독주택들 거의 모두가 뜰 같은 걸 없애고 땅에 꽉 차게 지은 4층짜리 빌라들로 바뀐 것이다.

바뀐 것은 산책로만이 아니다. 군인들이 길섶마다 야생화를 서투르게나마 열심히 심다 실패하고 또 심다 실패하던 현충원도 민간인 운영으로 바뀌면서 공기가 맑은 평범한 산책로가 되었다. 그리고 꽤 높은 축대 위에 세운 아파트의, 내가 사는 동향한 동(棟)에서 동편을 보면 주로 이층짜리 단독주택들로 이루어진 긴 아랫동네가 있고 그 건너편 언덕에 한 줄로 길게 늘어선 아파트들이 있었다. 이들 아파트의 창들이 가을 저녁 합심해서 햇빛을 황금빛으로 반사하는 광경은 다른 데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속으로 나만의 단독주택을 꿈꾸던 나에게도 그 광경은 얼마동안 꿈을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



가을 들어 처음으로 은행잎이 비행 연습을 시작하는 저녁

동향한 창 밖으로

건너편 언덕 아파트의 모든 창들이 일제히 황금향으로 피어난다.

대가(代價) 없이 자신을 태우는 황금의 절창들!

지금 사는 아파트에서는

한 해 가운데 이 한때가 가장 마음에 든다.

(‘사는 기쁨’ 중간 부분)



3년 전인가 오른쪽으로 초등학교가 하나 생기면서 황금빛을 상당 부분 막아버렸고, 작년엔 동네의 건너편 절반이 아파트로 바뀌면서 반사광 전체를 막아버렸다. 새 아파트의 창이 햇빛을 반사하면 더 가까이 황금빛을 볼 수 있지 않느냐고? 그러나 새 아파트 건물들을 기존 아파트와 바투 마주 보게 세우면 프라이버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던지 설계자가 새 아파트 동들의 각도를 전부 다르게 만들어놓아 한 방향으로의 햇빛 반사를 원천적으로 봉쇄해 버렸다. 가을 저녁 한때의 찬란한 황홀이 완전히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언젠가 동작구에서 체육관 공사 중 지붕이 붕괴된 모습과 기사를 텔레비전과 신문을 통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계절 내내 그래도 변화하는 자연을 보여주고 공기가 맑은 현충원은 후문이 생긴 후부터 산책 두 번 가운데 한 번은 가는 곳이었다. 그 후문으로 가는 언덕길 길목에 몇 년 전부터 그린벨트를 훼손하는 체육관 공사가 시작된 것이다. 가는 길부터 넓히기 시작한, 참 오래 끌고 있는 공사이다. 처음엔 빌라촌이 된 골목을 지나 공사장의 소음과 먼지를 무릅쓰고 언덕을 올라가 현충원으로 들어가곤 했으나 공기는 그리 좋지 않지만 삶의 모습이 훨씬 더 아기자기한 아랫동네로 산책로를 옮겨보기도 했다. 그때 쓴 시다.



지겹게도 오래 끄는군, 체육관 공사!

현충원 올라가는 언덕 못 미쳐

불도저 소리 위로 자욱이 이는 먼지를 보고 투덜대며 돌아서는 나를

아랫동네에 임시 산책길 낸 내가 다독인다.



사라진 줄 알았지?

컴퓨터 글씨체로 침술원 간판 써 붙인 손님 드문 집

어느 하루 분주하다 정적에 싸이곤 하는 떡집

철물점 삼층, 가슴 내밀듯 ‘여성철학원’ 큰 간판 둘이나 내단 점집

눈에 잘 띄는 곳에다 번듯하게 차린 열이 넘는 교회와

목공소 이층, 건물 밖 층계 비좁고 어둑한 다락방 교회.



자전거포 다음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보면

담 너머로 가지 슬쩍 넘겨 손닿을 높이에

황금 단감 여덟 개를 익히고 있는 집….

(‘아랫동네 산책’ 앞 부분)



그러나 지금은 아랫동네 모든 집의 담이나 창에 ‘공가(空家)’라는 스프레이가 뿌려졌다. 두 달 전부터 아랫동네 전체가 재건축 대기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정말 친근해진 내 문학의 무대가 단골 이발소와 함께 이제 완전히 추억 쪽으로 건너가 버렸다. 그리고 나는 졸지에 혼자 타관에 남은 신세가 되었다. 이 땅에서 이런 일을 당한 문학인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아니, 도시에 사는 문인 대부분이 벌써 겪었거나 지금 겪고 있는 사태인지도 모른다.

나는 속으로 빈다. 앞으로 정든 타관이 사라진 시를 쓰게 될 텐데, 내가 쓴 시 채 못다 읽고 가게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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