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재판에 이용않겠다 약속”
일제 강제노동 피해자 임금 등
65년 해결됐다는 입장 강조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이 메이지(明治) 산업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 ‘강제 노동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는 취지의 발언을 남긴 것은 현재 한국에서 강제 노동 피해자들이 미지급 임금 등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또 세계유산위원회 최종 회의가 하루 연기된 것도 강제 노동에 대해 회의 석상에서 어떻게 표현을 할지, 이 발언에 대한 향후 파장은 어디까지로 한정할지를 두고 한·일 외교 당국 간 막판 협상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일 오후 독일 본에서 열린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메이지 산업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정되자, 기시다 외무상은 도쿄(東京) 외무성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모두 발언을 통해 “외교 채널을 통한 대화에서 한국이 이번 발언을 한·일 청구권 문맥에서 이용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며 “또 일본 대표가 발언한 ‘forced to work’라는 표현이 ‘강제 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실제 일본에서는 ‘forced to work’란 영어표현을 ‘일하게 됐다(かされた)’고 번역했다. ‘강제노동’ 이란 의미는 사라진 것이다.

앞서 지난 4월 한국에서는 강제징용 피해자 및 유족 등 1004명이 미쓰비시중공업, 미쓰이, 아소광업, 닛산토목 등 72개 일본 기업을 상대로 미지불 노임과 손해배상,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지난 2012년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등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국내에서 일본 전범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최대 규모의 소송이다.

이런 가운데 기시다 외무상의 발언은 강제 노동이란 역사적 오점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뿐만 아니라 현시점에서의 법적인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일본 언론사 기자가 “한·일 청구권협정을 전제로 이후에 한국 정부가 이번 발언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것에는 어떤 근거가 있느냐”고 묻자 기시다 외무상은 “한국 정부와 고위급 채널을 통해 확인했다”고 답했다. 즉, 한국 정부도 일본 측의 이 같은 의견을 받아들였다는 주장이다. 기시다 외무상은 또 “회의가 하루 늦어진 것은 상대방(한국) 측의 이야기”라며 “상대방이 있는 가운데 등록을 확실히 하기 위해 겨우겨우 조율했다”고 말했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
박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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