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이 횡행했던 중세 유럽은 인권 보장의 큰 축인 형사법이 가장 암울했던 시기였고,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우리는 300년 전 중세유럽 형사재판의 역사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장면을 봤다. 바로 북한의 장성택 등에 대한 재판과 처형이다. 처형 이유는 북한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 등으로 알려졌지만, 그 재판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모독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이 같은 충격적인 사실에 영향을 받았는지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지난해 4월 17일 사상과 표현, 종교의 자유 침해, 차별, 고문 등 북한의 인권 침해가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심각하다고 판단, 이는 반인도 범죄에 해당하므로 권한 있는 국가 또는 국제적 사법기관에 의해 형사수사가 시작돼야 할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최종 조사 보고서에서 발표했다. 그 후 유엔 인권이사회는 유엔 북한인권사무소를 설치하는 내용의 북한 인권 결의안을 채택했고 한국도 이에 찬성했다.
프랑스혁명 후 “인간은 자유롭게, 또한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제1조)를 필두로 한 인권선언은 비단 프랑스 인민만이 아닌, 전 세계인의 자유를 선언했던 것이다. 프랑스는 1948년 유엔총회에서 결의된 세계인권선언문의 작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이래, 유럽 인권협약, 유럽 인권재판소 창설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북한 인권에 대한 유엔 결의는 프랑스혁명의 주도자들이 생각한 인권의 세계화 시대에 부응한 결정으로 보인다.
북한을 포함한 아시아에는 지역적 인권재판소가 있는 유럽 및 미주지역 등과 달리 현재까지 범세계적 관할권을 가진 국제인권재판소는 없기 때문에 인권 침해에 대해 인권재판소에 개인이 직접 제소할 수 없다. 다만, 2012년 상설 국제형사재판소가 설치돼 집단살해, 반인도적 범죄, 전쟁범죄, 침략범죄 등 4대 핵심 범죄에 대해 관련국이 성실하게 재판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에 직접 범죄인을 재판하고 처벌할 수 있게 됐다.
이 재판소의 재판은 각국 국내 법원을 보완하는 것이고, 미국·북한 등 ‘국제형사재판에 관한 로마 규정’에 가입하지 않은 비당사자 국가의 경우에는 이 법원의 재판을 수락해야 관할권을 갖는 한계가 있지만,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우리 국회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요청에 응답해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기왕에 여당과 야당이 제출한 북한인권법을 잘 검토해 이를 제정해야 한다. 북한 인권법에는 북한 사람들의 생활권적 기본권을 최소한도로 보장할 수 있는 지원 등과 함께 잔혹한 형벌, 고문 등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 범죄에 대한 증거의 수집과 보존 기구 설치, 북한 인권 민간단체에 대한 지원 등도 포함돼야 한다. 진보적 인권 단체도 북한 인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어떤 정권이라도 보수나 진보 단체를 차별적으로 지원해서는 안 된다.
여성, 장애인, 외국인, 성 소수자를 포함한 인간의 존엄성 보장이 진보 인권운동의 제일의 목표라는 점에 비춰 지금까지 진보적인 인권 단체가 북한 인권 문제를 도외시한 것은 정체성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국제 인권운동은 독재국으로부터 내정간섭이라는 반발이 필연적이므로 비단 남북한만이 아니라, 어느 국가든 외교적 마찰을 초래함에도 인권 단체들이 유독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룰 때 남북 관계를 강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통일 후 북한 주민들로부터 들을 원성이 두렵다면 정체성을 포기하면서까지 외교 문제를 고려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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