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고택
추사고택은 김정희의 증조부 김한신이 영조의 사위가 되면서 하사받은 집이다. 김정희는 1786년 이 집에서 출생했다. 김정희를 낳을 때 우물이 갑자기 마르고 뒷산의 풀과 나무들이 모두 시들었다가, 그가 태어나자마자 우물이 다시 차오르고 나무와 풀들도 생기를 되찾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추사 김정희는 고증학의 문호를 개설한 학자며, 문장가다. 글씨는 물론이고 그림에도 뛰어나 예술가로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금석학 연구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으며 천문학·지리학·문자학·음운학에 정통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질곡은 있었다. 1819년 문과에 급제해 규장각 대제, 호서안찰사를 거쳐 병조판서에 이르는 등 승승장구하던 중 예기치 못한 시련이 닥쳤다. 55세 때 윤상도 옥사에 연루돼 9년에 걸친 제주도 유배생활을 했다. 65세 때는 진종조예론(眞宗弔禮論)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돼 다시 2년간 함경도 북청에 유배됐다. 하지만 추사는 가장 절망적인 상황을 예술로 승화시켜 추사체라는 독특한 경지의 글씨를 만들었다. 이에 대해 박규수는 “제주도 유배시절에 완성되었다”고 평한 바 있다.
‘大乘의 실천자’ 경허 · 만공
호방한 선풍에 일화도 많아
수덕사
수덕사를 오늘의 대찰로 만든 이는 경허와 만공스님이다. 경허 성우(鏡虛 惺牛·1849∼1912)는 조선말기의 침체됐던 불교계에 등장해서 선불교를 진작시킨 선의 혁명가이자 대승(大乘)의 실천자였다. 만공 월면(滿空 月面·1871∼1946)은 스승인 경허를 계승하여 선풍을 진작시킨 선지식이다. 일제강점기 선우공제회운동(禪友共濟會運動)에 지도자로 참여했으며, 31본산 주지회의에 참석하여 조선 총독 미나미에게 일본의 한국불교정책을 힐책했다.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호방한 선풍을 지녔던 두 스님은 숱한 일화를 남겼다.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야기도 여럿이다. 어느 날 스님이 제자와 함께 고갯길을 넘는데, 제자가 다리가 아파서 더는 못가겠다고 꾀를 부렸다. 그때 마침 밭에서 남편과 함께 일하던 아낙이 있었는데, 스님이 달려들어 와락 껴안고 입을 맞췄다고 한다. 놀란 남편이 죽이겠다고 쫓아오는 바람에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고개를 훌쩍 넘었다. 제자가 스님에게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따지듯 묻자 “네가 다리 아파 못가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덕분에 여기까지 쉽게 오지 않았느냐”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두 스님의 법도를 넘어선 호기를 상징하는 일화라고 할 수 있다.
추사고택은 김정희의 증조부 김한신이 영조의 사위가 되면서 하사받은 집이다. 김정희는 1786년 이 집에서 출생했다. 김정희를 낳을 때 우물이 갑자기 마르고 뒷산의 풀과 나무들이 모두 시들었다가, 그가 태어나자마자 우물이 다시 차오르고 나무와 풀들도 생기를 되찾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추사 김정희는 고증학의 문호를 개설한 학자며, 문장가다. 글씨는 물론이고 그림에도 뛰어나 예술가로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금석학 연구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으며 천문학·지리학·문자학·음운학에 정통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질곡은 있었다. 1819년 문과에 급제해 규장각 대제, 호서안찰사를 거쳐 병조판서에 이르는 등 승승장구하던 중 예기치 못한 시련이 닥쳤다. 55세 때 윤상도 옥사에 연루돼 9년에 걸친 제주도 유배생활을 했다. 65세 때는 진종조예론(眞宗弔禮論)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돼 다시 2년간 함경도 북청에 유배됐다. 하지만 추사는 가장 절망적인 상황을 예술로 승화시켜 추사체라는 독특한 경지의 글씨를 만들었다. 이에 대해 박규수는 “제주도 유배시절에 완성되었다”고 평한 바 있다.
‘大乘의 실천자’ 경허 · 만공
호방한 선풍에 일화도 많아
수덕사
수덕사를 오늘의 대찰로 만든 이는 경허와 만공스님이다. 경허 성우(鏡虛 惺牛·1849∼1912)는 조선말기의 침체됐던 불교계에 등장해서 선불교를 진작시킨 선의 혁명가이자 대승(大乘)의 실천자였다. 만공 월면(滿空 月面·1871∼1946)은 스승인 경허를 계승하여 선풍을 진작시킨 선지식이다. 일제강점기 선우공제회운동(禪友共濟會運動)에 지도자로 참여했으며, 31본산 주지회의에 참석하여 조선 총독 미나미에게 일본의 한국불교정책을 힐책했다.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호방한 선풍을 지녔던 두 스님은 숱한 일화를 남겼다.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야기도 여럿이다. 어느 날 스님이 제자와 함께 고갯길을 넘는데, 제자가 다리가 아파서 더는 못가겠다고 꾀를 부렸다. 그때 마침 밭에서 남편과 함께 일하던 아낙이 있었는데, 스님이 달려들어 와락 껴안고 입을 맞췄다고 한다. 놀란 남편이 죽이겠다고 쫓아오는 바람에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고개를 훌쩍 넘었다. 제자가 스님에게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따지듯 묻자 “네가 다리 아파 못가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덕분에 여기까지 쉽게 오지 않았느냐”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두 스님의 법도를 넘어선 호기를 상징하는 일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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