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이 없습니다!(No way)”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대니 라이프지거 조지워싱턴대 교수의 답변은 단호했다. “1997∼1998년 한국에서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벌어졌던 ‘금 모으기 운동’ 같은 움직임이 그리스에서도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다. 2011년 10월 19일 문화일보 창간 20주년 인터뷰를 위해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조지워싱턴대로 라이프지거 교수를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필자가 라이프지거 교수를 만난 날은 그리스 의회가 추가 구제금융 지원을 받기 위한 긴축 재정안을 가결시켰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리스의 노조가 대대적인 파업을 시작했다는 뉴스가 전해진 직후였다.
독일 이민자의 2세로 본인의 힘만으로 브라운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세계은행 부총재까지 지낸 라이프지거 교수가 그리스에 대해 얘기하는 목소리에는 어딘지 서늘함이 배어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서 벌어진 금 모으기 운동 같은 것이 그리스에서도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물었을 때 라이프지거 교수가 단번에 가능성을 일축한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라이프지거 교수는 1997년 세계은행이 외환위기를 맞은 한국에 1차로 3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할 당시 실무 총책임자였다. 개인적으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에 대해 내린 처방은 ‘잘못된 것’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IMF도 이 같은 사실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니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하다.
그리스 국민도 벌써 몇 년째 계속되고 있는 긴축 정책에 대해 불만이 많을 것이다. 우리는 외환위기 당시 IMF의 불합리한 조치에 일방적으로 당했지만, 그리스의 경우 채권단의 주장에 불합리한 점이 있다면 당연히 고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IMF나 채권국이 강제로 돈을 빌려 가라고 떠안긴 것이 아니라면, 그리스도 채무를 갚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감당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그리스는 인구 1100만 명에 전 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날씨, 국내총생산(GDP)의 약 16%를 관광 수입으로 올릴 수 있을 만큼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전 세계에 우호적인 여론이 많은 것도 강점이다. 그러나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주장하는 것처럼 국민투표에서 추가 긴축 요구안에 대해 반대표가 많이 나온 것이 향후 채권단과의 협상에서 그리스에 유리한 입지를 제공할지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사회적인 이유 때문에 경제 논리의 적용이 잠시 미뤄질 수는 있지만, 현재 그리스처럼 경제 논리가 강력하게 위협받는 경우 그런 상황이 중·장기적으로 지속된 사례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 문제가 유럽 경제 전체로 확산되거나, 미국의 금리 인상이나 중국 등 신흥시장의 불안과 맞물릴 경우 세계 경제에 미칠 충격이 예상보다 훨씬 커질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한국과 그리스 간에는 경제 관계가 깊지 않다’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서는 안 되고 적극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haedong@munhwa.com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