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필명으로 살다 간 기구한 운명의 소설가 최명근(왼쪽 사진)이 김동리 추천으로 등단한 지 60년 만에 자신의 이름을 찾았다. 1996년 60세로 세상을 떠난 최명근의 역사소설 ‘정막개’(기파랑)가 이번 주, 그의 이름으로 출간됐다.
1936년 경남 의령 출생인 그는 1955년 부산대 사학과 1학년 때 ‘현대 문학’ 10월호에 ‘후천화일점’이라는 작품으로 김동리의 추천을 받은 촉망받는 작가였다. 많은 작가들이 필명으로 투고했던 시대 유행에 따라 그 역시 최희성이라는 필명으로 투고했다. 하지만 그의 ‘필명’ 인생은 그 뒤에도 계속됐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병역을 기피함으로써 본명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는 재혼해, 9명의 동생을 책임져야 했던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동생들 이름으로 고액 상금이 걸린 각종 문학상 공모에 응모하기 시작했다. 1966년 한국일보 주최 추리 소설 공모에 동생 최정협 이름으로 낸 ‘흙바람’이 당선됐고, 이는 1967년 이만희 감독의 동명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 인연으로 한국일보 주간 여성 기자로 발탁돼 16년간 최정협이라는 필명으로 일했다. 1986년에는 삼성문화재단 소설 공모에 다섯 번째 동생 최명진 이름으로 응모한 ‘자결고’가 당선되기도 했다.
이번에 출간된 ‘정막개’ 역시 그가 1982년 경향신문 주최 2000만 원 현상 장편소설 공모에 역시 동생인 최민조라는 이름으로 응모, 최종심까지 올라갔다가 탈락한 작품이다. 당시 소설가 박완서, 홍성원과 함께 심사를 맡은 김동리는 27년 만에 다시 최명근의 작품을 만났지만, 그가 자신이 추천한 ‘후천화일점’의 최희성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평생 미혼으로 살다 세상을 떠난 그의 작품이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된 것은 2년 전 그의 바로 아래 동생인 최정협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여동생 최예욱(68) 씨 부부에게 보관하고 있던 원고 뭉치를 전하면서 이뤄졌다. 1250장짜리 기존 응모작에 400여장을 덧붙여 새로 쓴 1650장 분량의 완전 원고였다. 매제인 김재환(70) 한림대 영문학과 명예교수는 이를 컴퓨터 파일로 옮긴 뒤 지인인 김선학 동국대 국문과 명예교수에게 평가를 부탁했고, 출간으로 이어졌다. 소설 ‘정막개’는 조선 중종 시대, 최하급 노비에서 일약 정3품 상호군 자리에 오른 실존 인물 정막개의 인생 유전을 통해 권모술수와 파렴치한 인간성 파괴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감칠맛 나는 문체와 풍부한 역사 지식으로 선 굵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최 작가는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에 자신의 이름으로 주민등록증을 받았다고 한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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